[노병천 박사의 손자병법인문학]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세 얼간이가 빚은 최악의 졸전 발라클라바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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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략리더십 연구원장

군명유소불수(君命有所不受)
『손자(孫子) 구변 제8편』

회사나 시청이나 군대와 같은 공공단체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까? 그렇다.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자리까지 올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조직의 높은 자리는 무능력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게 된다는 말이다. 참 우습지 않은가? 이것이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렌스 피터가 주창한 피터의 법칙이다. 발라클라바(Balaclava) 전투는 능력이 없는 리더가 높이 올라갔을 때 얼마나 조직에 나쁜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다.
발라클라바 전투는 크림 전쟁 당시인 1854년 10월 영국과 러시아가 벌인 전투이다. 당시 영국은 돈을 주고 벼슬을 사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이 되었기 때문에 그저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귀족들이 장교 직을 돈으로 샀다. 루컨 경이나 카디건 경이나 래글런 경이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카디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 아닌가? 그렇다. 오늘날 스웨터에 단추가 달린 옷인 카디건(cardigan)이라는 옷을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아하!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그저 멋진 군복과 반짝이는 훈장 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1854년 10월 25일 오전, 11,000명의 러시아 보병 부대가 발라클라바를 점령하기 위해 공격해왔다. 이 와중에 래글런 경은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장교 부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노닥거리며 소풍을 즐기러 온 사람처럼 행동했다. 곧이어 영국군과 러시아군은 서로 엉켜 권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혼전을 벌였다. 그런데 불과 500m 지점에 있던 카디건 휘하의 영국 경기병대 600명은 이들을 그저 구경만하고 있었다. 말로 달려서 1분! 곧바로 영국군을 지원했다면 전세는 확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상부 명령이 없다는 이유로 카디건 경은 수염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후일 그는 군사법정에서 “루컨 경이 어떤 일이 있어도 현 위치를 떠나지 말고 러시아 군이 공격해 올 때만 방어를 하라고 명령했다. 나는 러시아군이 공격해 오지 않아서 그대로 있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래글런 경이 그렇게 명령을 했었기 때문이다. 한참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멀리 떨어져서 높은 곳에 있던 총사령관 레글런 경이 러시아 군이 그들의 진지에서 대포를 이동시키는 것을 봤다. 머리는 나빠도 시력 하나는 좋았나보다. 다급해진 그는 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기병대는 재빨리 전방에 있는 적군을 공격하여 대포를 운반해 가지 못하게 하라!” 이 명령을 받은 루컨 경은 당혹스러웠다. 낮은 곳에 있었던 그에게는 러시아군도 보이지 않았고 대포 또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루컨 경은 화를 버럭 내면서 부지휘관 카디건 경에게 경기병대로 노스밸리로 진격할 것을 재촉했다. 그런데 그곳은 러시아군 1만 1천의 보병과 60문 이상의 포대와 삼면이 포위된 공간이었다. 진격해 들어가면 그야말로 호랑이 입으로 들어가는 자살행위였다. 그러나 루컨 경은 총사령관의 명령이기 때문에 곧바로 시행해야한다고 빽빽 소리를 질렀다. 카디건 경도 뻔히 부하들이 죽을 줄을 알면서도 루컨 경이 시키는 대로 부대를 정렬시킨 뒤에 고래 소리를 질렀다. “기병 부대, 전방을 향해…….진격!” 이렇게 해서 불과 673여명의 기병이 호랑이 입으로 똑바로 뛰어 들어갔다. 이것이 훗날 ‘영국군 역사상 가장 졸렬한 전투’로 기록되는 ‘경기병 여단 돌격 사건’이다. 이 돌격과정에서 51%에 해당하는 기병 345명이 죽고 결국 후퇴하게 된다. 불과 20분 만에 일어난 끔찍한 참사였다.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다.
손자병법 구변(九變) 제8편에 보면 ‘군주의 명령이라도 듣지 말아야 할 바가 있다’(君命有所不受)는 말이 있다. 현지사정은 현장에 있는 지휘관이 잘 안다. 그런데 멀리 떨어져 있는 군주가 현지사정도 모른 채 기분 내키는 대로 명령을 내린다면 현장 지휘관이 듣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총사령관 래글런 경은 현장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전망이 좋은 높은 곳에 온갖 화려한 치장을 한 연단 위에서 멀찍이 전장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으로 직접 본 장면과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명령을 하달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특히 현장에 있는 지휘관의 판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자신의 부대가 분명히 패배할 것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총사령관의 명령이라고 루컨 경과 카디건 경은 곧이곧대로 이행했다. 전형적인 책임회피적인 행동이다. 잘못될 경우 그들은 ‘단지 명령대로 행했을 뿐’이라는 변명의 구실을 대려 했을 것이다. 잘못을 알고도 ‘노’(No)라고 말할 수 없는 리더는 이미 리더가 아니다. 때로 적보다 무서운 것은 내 편에 있는 무능한 지휘관이다. 발라클라바 전투는 이들 세 얼간이가 빚은 최악의 졸전으로 영국인의 기억에 깊이 남아 있다.

君命有所不受 (군명유소불수)
임금의 명령이라도 듣지 말아야할 때가 있다
상사가 어떤 일을 시켰다. 그런데 아무리 뜯어봐도 그 일은 경우에 맞지 않는다. 현장에 한 번도 가보지 않고 내리는 지시임에 틀림없다. 만약에 고분고분 상사의 말을 듣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회사가 큰 손해를 입을 것 같다. 힘들게 성사시킨 거래마저 깨질 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상사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나만 “팍!”찍히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어이구, 내 밥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상사의 말을 듣게 되면 회사가 위험하고, 듣지 않으면 내가 위험하다. 그야말로 진퇴양란! 이런 저런 생각에 김 과장은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런 경우에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손자병법 지형(地形) 제10편에 보면 군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이 제시되고 있다. ‘싸움의 법칙(戰道)’에 비추어 결정하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기업에 있어서 ‘싸움의 법칙’은 무엇인가? 상도(商道)다. 장사를 하면서 나름대로 지키는 원칙이요 도리다. 개성상인들은 봄에 빗자루를 하나 팔더라도 그 값을 당장 받지 않고 곡식이 나는 가을에 찾아와 받겠다고 하며 외상을 놓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세 가지 이유다. 첫째, 당장 돈 없는 부담을 들어주려는 배려다. 둘째, 그동안 물건을 사용하면서 그 품질에 믿음을 가지게 한다. 셋째, 소비자와 끈끈한 신뢰를 쌓는다. 이것이야 말로 일거삼득의 상술이 아닌가! 이러한 원칙을 지키면서 당장의 이익보다도 멀리 볼 때 더 큰 이익이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가? 그렇다. 이제 김 과장은 상사에게 “노(No)!”라고 말해야 한다. 그 대신에 ‘싸움의 법칙’에 비추어 조목조목 그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다. 상사의 명령을 회사 ‘이익’ 차원에서 따져보는 것이다. 필요하면 각종 데이터와 사례를 들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 절대로 상사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된다. 눈치껏 상사의 기분도 헤아리고 적당히 권위를 세워주면서 지혜롭게 의견을 말하라. 노맨(No-man)의 생존기술이다.
노(No)라고 말하려면 그만한 실력을 갖추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