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천 박사의 손자병법인문학] 싸우지 않고 이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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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략리더십 연구원장

 한신의 연나라와 제나라 정복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不戰而屈人之兵善之善者也)
『손자(孫子) 모공 제3편』

“와, 부전승이다!” 동네 조기축구 리그전을 할 때 보면 추첨을 하면서 새마을 모자를 쓴 동네 아저씨들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이렇게 부전승(不戰勝)은 우리 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이 부전승을 사전에 찾아보면 ‘추첨이나 상대편의 기권 등으로 경기를 치르지 않고 이김’으로 나와 있다. 이 말은 맞기도 하지만 그릇된 표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경기’라는 말이 그것이다. 부전승은 동네축구와 같은 ‘경기’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과 같은 ‘싸움’의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본래 이 말의 어원이 손자병법에서 나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부전승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면 험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부전승은 추첨이나 경기에서 일어나는 단지 ‘운’이 좋아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부전승을 잘했던 사람이 있다. 한나라의 유방을 도와 천하를 도모했던 한신(韓信) 장군이다. 한신은 초나라와 위나라를 차례로 격파한 후 20만 대군의 조나라와 맞붙었는데, 이때 불과 1만 명으로 그 유명한 배수진(背水陣) 전략을 구사해 이들마저 격파했다. 그리고 다음 목표로 연나라와 제나라를 겨냥하고 있었다. 이때 한신은 조나라의 패장(敗將) 광무군(廣武君) 이좌거(李左車)를 극진히 대우하면서 그에게 다음 전쟁에 대해 한 수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좌거는 “패장은 병법을 논하지 않는 법”(敗軍之將不語兵)이라고 말하며 사양했다. 거듭된 간청을 못 이긴 이좌거는 한신에게 한마디 했다. “옛말에 ‘슬기로운 사람도 천 번의 생각에 한 번의 실수가 있을 수 있고(千慮一失),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의 생각에서 하나는 얻을 수 있다고 했다(愚者千慮必有一得)’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치광이 말일지라도 성인은 가려서 듣는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이좌거가 한 말의 핵심은 이렇다. 전쟁을 즉시 중단하는 대신 조나라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배불리 먹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신의 은덕이 사방에 소문이 날 것인데, 바로 그즈음에 말 잘하는 사람을 뽑아 연과 제에 보내 군대의 무용을 자랑해 겁을 먹게 하라는 것이다. 한신은 이좌거의 말대로 행했는데 과연 연나라가 지레 겁을 먹고 손을 들었다. 이것이 바로 싸우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한 부전승이다. 다음 목표는 제(齊)나라였다. 그런데 제나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병법의 시조라 일컫는 강태공이 봉읍을 받아 세운 나라였고, 자연조건이 좋은 굉장히 부유한 나라였다. 삼국지에 나오는 원소의 근거지였고, 칭기즈칸이 호라즘을 공략하기 위해 가장 중요시할 만큼 군사적 요충지이자 식량 창고였다. 무엇보다도 제나라는 70개의 강력한 성을 갖추고 있었다. 무력으로 공격하면 많은 피해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강한 제나라를 공략하는 대목에선 한신이 아니라 유방(劉邦)이 한발 더 앞서갔다. 말 잘하는 사신 한 명을 보내 세 치의 혀로 싸움 없이 고스란히 70개의 성을 접수해 버린 것이다. 어찌 된 일인가? 이미 한신의 소문은 제나라에도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한신보다도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유방은 이것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사신을 보내어 공갈을 치고 엄포를 놓았다. “내 부하 한신이 곧 당신의 제나라를 정복하러 올 것이니 미리 항복하라. 그러면 당신의 나라는 그대로 보존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고, 항복이요!” 바로 부전승이다. 한신을 잘 이용한 유방의 한 차원 높은 부전승이다.
손자병법 모공(謀攻) 제3편에 보면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고,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는 말이 있다. 백번 싸워서 비록 백번 다 이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좋지 않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싸우는 과정에서 상대방도 깨어지지만 나도 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어쨌든 내가 깨어지면 좋지 않다. 여기서 그 유명한 ‘부전승’(不戰勝)이란 말이 나왔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본래 부전승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정확하게 부전승이라고 연결된 말은 없고 단지 위 어귀 뒷부분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에서의 ‘부전’(不戰)과 앞 어귀 ‘백전백승’(百戰百勝)에서의 ‘승’(勝)을 조합해 신조어인 ‘부전승’(不戰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부전승은 오늘날 중국어 사전에는 ‘부전이승’(不戰而勝)이라고 명시돼 있다. 손자는 부전승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벌모(伐謀)를 말했다. 벌모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풀면 ‘적의 꾀를 베어버린다’는 것이다. 상대로 하여금 내 말에 절대 순종해 나를 거역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런 벌모가 가능할 것인가?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힘에 의한 벌모다. 힘은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상대에게 겁을 주는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권력(權力)이나 금력(金力)도 힘이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이런 힘 앞에 약해진다. 둘째는 이익에 의한 벌모다. 사람은 결국 ‘이익’을 좇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진시황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기 전에 진(秦)나라 왕이었을 때 “이 사람과 교유(交遊)하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말하곤 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법가 철학의 대부인 한비자다. 그는 사람을 움직이는 동인(動因)으로 이익, 권위와 이상, 즉 비전(vision)을 꼽았다. 여기서 한비자는 ‘이익’에 무게중심을 더 두었고 ‘이익’이야말로 사람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라고 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도, 심지어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결국 ‘이익’으로 엮인 관계라고 말할 정도다. 셋째는 ‘감동’에 의한 벌모다.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을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을 저절로 움직이게 하는 데 감동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출중한 인격에 의한 감동, 훌륭한 서비스에 의한 감동 등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 그런데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속성으로 인해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좋다

최근에 입사한 박사원은 출근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왜냐하면 일찍 입사했던 홍사원이 아무 이유도 없이 자기에게 싫은 눈총을 주기 때문이다. 라이벌 의식인가? 심지어 아주 작은 일에서도 언짢아하는 기색을 나타내곤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고함을 쳐버릴까? 아니면 옥상에 데려가서 멱살이라도 잡을까? 박사원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손자병법을 읽었다. 그리고 드디어 부전승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했을까? 그 다음날부터 박사원은 출근하자마자 자판기 커피를 하나를 빼들고 홍사원에게 갔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니 앞으로 잘 가르쳐주세요.”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홍사원이 날마다 변함없이 이렇게 하는 박사원을 보고 그만 마음의 문을 열었다. 박사원은 ‘감동’에 의한 부전승을 이룬 것이다. 진심을 담아 정성을 다하게 되면 아무리 단단한 마음의 빗장도 열린다. 부전승은 때로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