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천 박사의 손자병법인문학] 장례식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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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략리더십 연구원장 노병천 박사

역사를 바꾼 날씨 이야기

천자음양한시제야(天者 陰陽 寒暑 時制也)― 『손자(孫子) 시계 제1편』

“백두산이 폭발해서 발해가 멸망했다!” 혹시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발해는 698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들을 규합해서 세운 나라다. 220여 년 간 만주와 한반도 북부지역을 무대로 번영했던 나라였는데 그 멸망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백두산 폭발설이다. 동경도립대학의 마치다 히로시 교수에 의하면 북한에서 채취한 삼나무 탄화목의 연대측정 결과 백두산의 폭발연도는 911년에서 946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해가 망한 926년이 포함되어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강성했던 발해가 거란과의 단 한 번의 전투로 며칠 만에 멸망한 것은 백두산 폭발과 반드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 나라의 운명이 날씨와 자연재해와 직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진을 제외한 가뭄, 홍수, 허리케인, 산사태, 산불 등 자연재해의 80%가 날씨, 기후와 관련이 있다.” 2012년 3월 23일 세계기상의 날을 맞아 방한한 메리 파워 세계기상기구(WMO) 재정국장이 기조연설에서 한 말이다. 날씨와 기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얼핏 구분이 쉽지 않다. 기상청에 따르면 날씨는 그날그날의 비, 구름, 바람, 기온 따위가 나타나는 상태를 말하며, 기후는 어떤 지역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일정 기간의 평균 기상 상황을 말한다. 메리 파워의 말처럼 날씨와 기후는 자연재해를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때에 따라서는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역사를 뒤바꾸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출병했던 명나라는 1644년 16대 277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물론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자성의 난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날씨도 한몫했다. 당시에 명나라는 잦은 전쟁과 무거운 세금, 황제 숭정제의 포악한 치정으로 인해 백성들의 속은 부글거리고 있었다. 섬서통지의 기록에 의하면 1622년부터 1629년까지 8년간 내내 가물고 비가 오지 않았다. 1633년에는 서안에 가뭄과 기근이 들어 굶어 죽은 시체가 길에 널려 있었다. 몹시 가물어 한 말의 쌀값이 1000전이나 되었고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고 한다. 견디다 못해 36개의 도적 집단이 연합하여 약 20만 명을 모아 이자성을 중심으로 한 반란군을 일으켰다. 명나라의 마지막 보루는 개봉이었다. 개봉은 명나라를 대표하는 강력한 도시였는데 과연 몇 달을 공격해도 함락되지 않았다. 이때 이자성이 선택한 무기는 바로 ‘장마’였다. 황하지역에 둑을 쌓아 때마침 쏟아진 장맛비를 가두었고 1642년 9월에 둑을 터뜨려 개봉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2년 후 명나라는 멸망했다. 명나라의 멸망은 이렇게 날씨와 관련이 깊다. 중국 최초의 농민전쟁도 날씨와 관련이 있다. 기원전 209년 초여름이었다. 어양으로 파견된 900명의 진나라 병사들이 장마로 인해 북경으로의 복귀가 늦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에는 정해진 날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참수형에 처한다는 엄격한 법이 있었다. 이때 진승이라는 자가 “어차피 늦어졌는데 도착해도 죽게 된다. 그럴 바에는 대장부답게 이름이나 떨치자.”면서 오광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중국최초의 농민반란전쟁이다. 전쟁 기간 중에 많은 비가 왔는데 이 비는 잘 훈련된 정규군에게는 유리했지만 훈련이 되지 않은 농민군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특히 질서를 유지해야하는 야간전투에는 더욱 그러했다. 결국 농민반란전쟁은 진나라군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이 반란은 훗날 진나라가 멸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날씨가 한 나라의 운명을 가늠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날씨와 관련된 중요한 일이 있었다. 부여의 멸망이다. 주몽은 이복형 대소 왕자의 위협을 피해 졸본부여로 가서 귀족 소서노와 혼인했고 37년 고구려를 건국했다. 부여의 왕인 된 대소는 고구려의 2대왕인 유리왕에게 조공을 요구했다. 오랜 한파와 가뭄으로 인한 식량 부족을 메꾸기 위해서였다. 고구려도 가뭄으로 인해 식량이 부족하자 조공을 거부했다. 그러자 대소는 6년 11월, 5만의 병력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다. 이때 예기치 못한 한파와 폭설이 내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부여군은 대패하고 말았다. 9년 후인 13년 11월 다시 대소가 고구려를 침공했다. 이때 고구려는 3대왕 무휼이 왕으로 있었다. 대소왕은 고구려의 수도인 국내성 코앞까지 진격해 있었다. 대무신왕 무휼의 전략은 명확했다. ‘날씨’를 이용한 전략이었다. 강추위가 몰아치는 날을 이용해서 설마하고 방심했던 고려군을 쳤다. 2차전에서도 부여군은 대패했다. 약 9년 후인 22년 2월에 또다시 대서는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고구려를 침공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날씨가 작용했다. 전차와 기병을 중심으로 한 부여군은 언 땅이 따뜻한 봄기운으로 인해 녹아 진흙탕이 되자 그만 발이 묶인 것이다. 이를 틈타 대무신왕은 중심부를 향해 총공격 명령을 내렸고 부여군은 또다시 대패했다. 이 3차전에서 마침내 부여 왕 대소가 전사했다. 날씨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 것이다.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다. 당시 고려의 우왕은 명나라를 치기 위해 최영을 중심으로 한 정벌군을 준비했다. 이때 이성계는 다음 네 가지의 이유를 들어 정벌을 반대했다.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치면 안 된다. 전군이 원정으로 나가면 왜구의 침입이 우려된다. 여름철에 군사를 발동시키면 안 된다. 장마철이 되면 활쏘기가 불리하고 질병 발생의 우려가 있다. 그러나 “요동 정벌은 나의 숙원”이라고 고집하는 우왕으로 인해 결국 출정을 하게 되었고 1392년 음력 5월 7일에는 압록강을 건너 위화도에 도착했다. 이때 압록강 지역에 장마가 시작되었고 뗏목을 타고 무리하게 건너다가 수백 명이 익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의 전반적인 기후는 심한 장마뿐만 아니라 6,7월의 차가운 바람과 여름 냉기로 인해 군사의 기동은 물론 전쟁하기 매우 어려웠다. 이성계는 우왕에게 회군을 허락해달라고 간청했다. 돌아오는 우왕의 답변은 “도망병은 현지에서 참하라.”는 것뿐이었다. 마침내 이성계는 군사를 돌이켜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웠다. 날씨가 왕조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손자병법 시계(始計) 제1편에는 나의 태세를 점검하는 요소로 다섯 가지의 기준이 나온다. 이른바 오사(五事)라고 하는 개념으로,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이다. 이 중에서 두 번째인 천(天)의 요소는 날씨와 기상과 기후에 관한 것이다. 위와 아래가 한 마음이 되었는가를 따져보는 도(道)의 개념 바로 다음에 위치하고 있어 그 중요도를 대변하고 있다. 정확히 원문을 보면 이렇다. “천이란 밤과 낮, 추위와 더위, 사계절의 변화를 말한다(天者 陰陽 寒暑 時制也). 하루 중의 변화로부터 일 년 사계절의 모든 변화를 담고 있다. 변화되는 날씨를 예측하고 미리 복장과 무기를 준비하며 다양한 날씨 상황에 숙달된 부대는 승리하지만 그렇지 못한 부대는 패배하는 것이다.

天者 陰陽 寒暑 時制也

천자음양한서시제야

천이란 밤과 낮, 추위와 더위, 사계절의 변화를 말한다.

오늘날 이러한 날씨는 비단 전쟁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사업을 하는 기업체나 세일즈맨에게는 날씨가 매출을 좌우할 정도다. 날씨 경영, 날씨 마케팅은 그래서 나온 용어다. 유통업계에서는 ‘경기는 3할, 날씨는 7할’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날씨가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LG유통조사에 따르면 아이스크림은 기온이 섭씨 5도에서 10도로 오를 때에는 매출에 큰 변화가 없으나 25도에서 30도로 오를 때는 36%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주가 가장 많이 팔리는 기온은 10℃ 내외였고, 가장 적게 팔리는 기온은 20℃ 내외였다. 모(某)마트에서는 비가 오는 날 방문하는 고객에게 10% 할인혜택을 줌으로써 비가 오면 외출을 꺼리는 고객을 매장으로 유인하고 있다. 기발한 날씨 전략이다. 세계기상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날씨 정보를 활용하는데 쓰이는 비용은 투자액 대비 10배 이상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정보의 활용은 미국은 8배, 중국은 30배, 한국은 20배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기상청에서는 보다 정확한 날씨 예측을 위해 첨단장비를 갖춘 기상관측선 기상1호를 운영하고 있다. 기상1호는 동북아 해역의 기상재해를 최소화시키고 경제교류 활성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에는 우주 날씨 예보도 가능해졌다. 이는 태양의 흑점활동이나 폭발 등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스마트폰 등으로 동네별 날씨예보도 가능해졌다. 목적지를 설정해놓으면 목적지까지 가는 길의 날씨와 6개월 후의 날씨까지도 스마트 폰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날씨는 더 이상 전쟁을 위한 지식이 아니다. 생활 전반에 걸쳐 날씨정보는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시대에 매출을 더 올리고 싶은가? 날씨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자. “얼마나 큰 부자가 되건, 얼마나 유명해지고 권력을 가지건 간에, 당신의 장례식 규모는 그날의 날씨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마이클 프리차드의 말이다. 정곡을 찌른 말이 아닐 수 없다.

날씨를 알면 세상을 앞서 간다.

天  者   陰  陽  寒  暑  時  制  也

하늘 천 놈 자  응달 음   볕 양   찰 한 더울 서  때 시 마를 제 어조사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