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천 박사의 손자병법인문학] 파격적인 아이디어로 승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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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략리더십 연구원장

줄루족의 이산들와나 전투
이정합 이기승(以正合 以奇勝) ― 『손자(孫子) 병세 제5편』

“창이 총을 이겼다!” 이 말을 믿을 수 있는가? 창이 어떻게 총을 이길 수 있는가? 머리를 잠시 엉뚱한 방향으로 써보자. 창이 총을 이길 수 있는 경우를 말이다. 그렇다. 총알이 떨어진 총과 싸울 때는 창이 총을 이길 수 있겠다. 한낱 막대기와 싸우는 격이 되니까 말이다. 또 다른 경우가 있는가? 그렇다. 5살 먹은 어린아이가 총을 들고 있을 때 어른이 창으로 이길 수 있겠다. 그렇지 않은가? 대략 이런 경우에는 창이 총을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다 큰 어른들이 싸우는 싸움에서 창이 총을 이긴 경우가 있다.
영국 사람들은 이 믿기지 않는 사실에 귀를 의심했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1879년 1월 21일 오전 9시 아프리카 남부 이산들와나(Isandlwana) 평원을 가득 메운 4만 명의 줄루족 전사들이 1800명의 영국군을 덮쳤다. 이산들와나 전투였다. 엄청난 병력 차이에도 영국군은 오히려 반겼다. ‘짧고 비용이 덜 드는 승리의 기회’로 여겼다. 신식 무기로 한꺼번에 다 해치우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후 2시쯤 끝난 전투의 결과는 상식을 뒤엎었다. 줄루족의 압승이었다. 영국군은 1329명(원주민 기병대 471명 포함)의 전사자를 내고 쫓겨났다. 도리깨ㆍ방패로 무장한 ‘미개한 흑인 군대에 대영제국이 패배했다’는 사실에 영국은 물론 유럽 대륙이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전투의 중심에는 한 명의 탁월한 리더가 존재했다. 바로 ‘검은 나폴레옹’이라고 불리는 샤카(Shaka)였다. 이산들와나 전투는 샤카가 죽은 지 50년이 지난 후에 줄루족의 마지막 왕이 되는 케츠와요(Cetewayo)에 의해 치러졌지만 승리의 뿌리는 샤카에게 있었다. 그가 모든 기반을 닦아 놓은 덕택이었다. 샤카는 무슨 준비를 했는가? 먼저 그는 개인의 전투력을 향상시켰다. 이를 위해 모든 전사들의 발바닥을 단련시켰다. 전사들이 땅의 형태와 관계없이 어디를 가든 맨발로 다니며 발바닥을 단련하게 했다. 나중에 그는 부하들에게 하루에 80㎞까지 맨발로 달리게 하고, 가시가 깔린 땅에서 훈련을 실시했다. 둘째, 줄루족의 기본 무기인 창을 개량했다. 샤카 이전의 창은 던지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한 번 던져버리면 다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샤카는 손잡이가 더 무겁고, 길이는 더 짧고, 날이 평평하면서 날카롭고, 적을 찌르기에 아주 좋은 창을 개발한 것이다. 셋째, 나무와 쇠가죽으로 된 방패를 개량했다. 전투 때 들고 다니기 쉽게 크기를 줄인 것이다. 샤카는 개인의 기초전력을 잘 다진 뒤에 집단이 잘 싸울 수 있는 체제를 개발했다. 집단 통제력을 높이기 위해 나이에 따라 연대조직을 편성했다. 그리고 독특한 표준 전술을 개발했는데 임폰도 잔코모라고 불리는 ‘황소의 뿔’ 전술이다. 개인 기술과 조직 기술에 이어 시스템적 기술 우위를 창안한 것이다. 황소의 뿔 전술은 주력부대가 위치하는 황소의 가슴, 바로 그 뒤에 위치하는 예비대 개념의 황소의 옆구리, 그리고 최정예 부대로 적의 측면이나 후방을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황소의 뿔로 구성된다. 샤카의 전사(戰士) 훈련 프로그램을 보면 먼저 개인의 역량을 높인 뒤 집단의 힘을 최대한 높였음을 알 수 있다. 한 명의 천재가 종족을 살렸다. 전투 이후 줄루족은 영국군과 비교해 손색없는 장비를 갖췄지만 이후 5개월 후 전력을 증강시킨 영국군에 패배하고 말았다. 노획한 소총과 대포를 제대로 쓰지 못해서다. 줄루족은 결국 13개 소국가로 분할되는 운명을 맞았다.
손자병법 병세(兵勢) 제5편에 보면 “정(正)으로 대치하고 기(奇)로써 승리를 거둔다(以正合 以奇勝)”라는 말이 나온다. 경쟁을 하거나 싸움을 할 때는 정(正)을 기반으로 하되, 기(奇)로써 이겨나간다는 말이다. 이것이 기정전략(奇正戰略)이다. 여기서 정은 무엇인가? 두 가지로 크게 말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유형전력(有形戰力)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전력(無形戰力)이다. 유형전력으로서의 정(正)은 힘의 실체를 말한다. 예를 들면 전쟁을 하기 위해 준비한 전차, 전투기, 대포, 미사일, 구축함, 잠수함, 어뢰, 지뢰, 통신장비, 요새 등을 포함한다. 전쟁을 하기 위한 기초자산이다. 기업경영 측면에서 본다면 자본력, 공장, 기계, 설비, CEO, 숙련된 인력, 종업원, 기술자, 연구원 등 인적·물적 자산을 말한다. 무형전력에서의 정은 무엇인가? 정도(正道), 원칙(原則)을 말한다. 기업 세계에선 상도(商道)를 가리킨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인 인력 훈련 수준, 숙련도, 기술력, 지적 노하우 등도 이에 해당된다. 경쟁을 할 때는 우선적으로 이런 유·무형 전력인 정(正)을 잘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싸움을 위한 기초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한 기본바탕이다. 이것이 약하면 오래가지 못하고 언젠가는 무너진다. 1970년 와우 아파트가 무너지고, 94년 성수대교, 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사건을 떠올려 보자. 기초가 부실하면 이렇게 무너진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층 건물은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칼리파(Buri Khalifa)다. 2010년 1월 4일 개장했는데 162층에 높이가 828m다. 여의도의 63빌딩(249m)이나 남산(262m)의 세 배쯤 되는 높이다. 그런데 이보다 170m나 더 높은 건물이 사우디아라비아 제다(Jeddah)에 세워진다고 한다. 무려 1001m 높이의 킹덤 타워(Kingdom Tower)다. 5년 후에는 아마 하늘을 찌르는 현대판 바벨탑을 보게 될 것이다. 부실공사나 편법이 아닌 정(正)으로 제대로 건축한다면 1001m가 아니라 2000m도 가능할 것이다. 기(奇)는 무엇을 말하는가? 잘 준비된 정(正)을 바탕으로 다양한 상황에 맞춰 승리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말한다. 새로운 아이디어, 창조적 발상을 말한다. 아무도 생각하지도 못한 돌출기법을 말한다. 적과 마주할 때는 정력(正力)으로 한다. 그리고 적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적의 측방이나 후방으로 특공대나 기병을 보낸다. 바로 이들이 결정적으로 승리를 엮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기의 역할이다. 이를 두고 ‘기로써 승리한다(以奇勝)’고 한다. 기는 전적으로 창의력에 달려 있다. 손자는 이렇게 말한다. “기를 잘 쓰는 자는 그 끝없음이 천지와 같고, 마르지 않음이 강과 바다와 같다(善出奇者 無窮如天地 不竭如江海).” 정과 기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정의 힘이 약하면 기가 발휘되는 영역은 제한된다. 기정(奇正)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 돌고 돌며 그 힘을 확장시켜 나간다. 그래서 이 둘의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는 승부의 세계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손자는 말한다. “본래 소리와 색깔은 다섯 가지이지만 서로 섞으면 그 변화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기정(奇正)도 두 가지에 불과하지만 기정의 변화를 다 알 수 없다(奇正之變不可勝窮).”

以正合 以奇勝
장이정합 이기승
정력으로 대치하고 기략으로 승리한다

직장 회의에서도 상석이 없는 원형 테이블에서 회의하면 좋다. 그러면 심리적인 부담을 줄이고 마음껏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다양한 정공법과 기공법을 조합하면 여러 가지 좋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 고객의 불만사항에 대해 그 해결책을 얘기하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히트 상품이 나올 수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화가들은 태양을 하나의 노란 점으로 바꾼다. 반면 또 어떤 이들은 노란 점을 태양으로 바꾼다.” 관점의 전환이다. 때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문제에 접근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생활 속에 손자의 기정전략을 적용해보자. 그러면 확실히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