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천 박사의 손자병법인문학] 007은 손자병법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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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략리더십 연구원장 노병천 박사

역사를 바꾼 스파이들의 활동

무소불용간(無所不用間) ― 『손자(孫子) 용간 제13편』

1962년에 1편이 나온 후에 꾸준히 제작되어 2008년에 22편까지 만들어진 영화는 무엇일까? 그렇다. 007영화다. 왜 이 영화는 이렇게 오랜 세월을 두고 만들어지는 것일까? 재미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리적으로 몰래 엿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아슬아슬한 스릴을 만끽하면서 멋있게 행동하는 스파이에 매료되기도 한다. 제임스 본드가 나오는 007영화는 스파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있다. 스파이라 함은 상대방의 허점을 공략하고 보안조치를 무력화시켜 유용한 정보를 획득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조르게라는 첩보원이 있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스탈린에게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해 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조르게는 1930년부터 1933년까지 중국 상해 주재 프랑크푸르트 신문사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일본의 침략전쟁에 불만을 품고 있던 오자키 호주미란 일본인을 포섭한다. 그리고는 1933년에 일본 특파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오자키를 일본수상 고노에 후미마로의 중국문제 브레인으로 잠입시켰다. 또한 조르게는 주일 독일대사인 오트에게 접근해 깊은 친분관계를 유지한다. 덕분에 독일에 관한 정보는 오트에게서, 일본에 관한 정보는 오자키에게서 얻어 양국의 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하게 알게 되었다. 그 결과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기 며칠 전, 침공 일자(1941년 6월 22일)와 병력의 수까지 정확하게 스탈린에게 보고하는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특히 그는 오자키를 통해 일본의 주 공격 대상이 소련에서 미국과 영국으로 바뀌었다고 하는, 당시 일본 최고의 국가기밀을 빼내는데 성공했다. 이 황금 같은 정보를 기반으로 스탈린은 일본의 공격에 대비해 국경을 지키던 수십 개의 사단을 즉각 서부전선에 투입했고, 이런 과감한 조치 덕분에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갔다. 한 명의 첩보원이 유출한 정보가 세계 역사를 바꿀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조르게가 전시 계엄하의 일본에서 암약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극소수에게만 공작했으며, 돈을 사용하지 않아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사례를 보자. 독일군이 소련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렸던 투하체프스키 장군을 제거한 공작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소련과 독일은 상호 긴밀히 제휴하고 있었고 군사 면에서는 소련의 대표로 투하체프스키 장군이 활동하고 있었다. 투하체프스키 장군은 군사적인 천재로서 그의 전략은 전 세계의 군사학도에게 대단히 권위 있게 알려져 있다. 문제의 발단은 투하체프스키가 주장하는 새로운 전략구상에 있었다. 1차 대전 당시 보병의 보조용도로 사용되었던 전차를 대량생산해서 대규모 기갑부대를 주축으로 화력전과 속도전을 하겠다는 대담한 구상이었다. 위협을 느낀 독일군 수뇌부에서는 그를 제거하는 모략에 착수했다. 먼저 독일군부에 보유하고 있었던 투하체프스키의 문서를 조작했다. ① 독일이 투하체프스키에게 돈을 지불한 것처럼 위조 지불증을 만들었다. ② 투하체프스키가 독일로부터 돈을 받은 것처럼 위조 수령증을 만들었다. ③ 독일모략부장이 수여한 것처럼 위조 감사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위조 문서를 만든 후에 이를 독일비밀경찰에 출입하는 소련 스파이에게 슬쩍 알려주었다. 1937년 5월 소련은 이 위조 문서를 독일에게서 200만 루우블에 샀다. 평소 군부의 쿠데타를 우려하고 있었던 독재자 스탈린은 이 첩보를 접하자 곧바로 투하체프스키를 처형했다. 이 사건이 있은 지 2년 후인 1939년 9월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은 투하체프스키가 구상했던 기갑부대 주축의 ‘전격전’으로 맹위를 떨쳤다. 한 명의 탁월한 천재가 이렇게 어이 없이 적의 제거공작에 의해 사라진 것이다.

손자병법 용간(用間)편에서도 요즘의 스파이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손자병법에서는 스파이의 종류를 다섯 가지로 구분해 향간(鄕間), 내간(內間), 반간(反間), 사간(死間), 생간(生間) 등 오간(五間)으로 부르고 있다. 향간은 적국의 주민을 이용하는 것으로 이른바 고정간첩을 말한다. 내간은 적국의 관리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조르게가 오자키를 이용한 것은 바로 내간이라 할 수 있다. 반간은 적의 스파이를 역이용하는 것이다. 이른바 이중간첩이다. 사간은 어떤 허위첩보를 유포하고, 결국에는 죽는 스파이를 말한다. 생간은 살아 돌아와서 보고하는 스파이를 말한다. 또 병경백자(兵經百字)라는 병법서에서는 스파이들이 사용하는 방법 16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아주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16가지 방법 중에 여간(女間)이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미녀를 이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또 해간(孩間)이란 것도 있는데 해(孩)라는 한자는 어린 아이를 말한다. 즉 해간은 어린 아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말을 곧이듣지 않을 어른이 어디 있겠는가? 어린 아이까지도 스파이로 이용하는 전략, 정말 무섭지 않은가? 이밖에 뇌간(賂間)이라는 것도 있다. 관리나 고위 지도자들을 뇌물로 구워 삼는 방법이다. 이렇게 손자병법에서 말하고 있는 5간이나, 병경백자에서 말하고 있는 16간을 보면, 스파이의 종류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자는 말한다. “명석한 군주와 현명한 장수는 먼저 간첩을 통해서 적정을 파악한다.” 간첩이 갖다 주는 정보는 일을 결정할 때 중요한 참고가 되기 때문이다. 간첩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손자는 간첩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대해도 언급하고 있다. ‘사람을 알아보는 고도의 지혜’를 갖고 있지 않으면 제대로 된 간첩을 선발할 수 없다. 그리고 선발된 간첩도 극진한 애정을 보여주고 파격적인 대우를 해서 감복(感服)시켜야 충성을 다하는 간첩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간첩을 통해 얻은 정보도 정밀하게 비교하고 검토해서 확실하게 걸러내야 참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기밀이 유출되면 간첩은 물론이고 이와 관련된 사람도 모두 죽여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군주는 다섯 가지의 간첩에 대해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명석한 군주와 현명한 장수만이 뛰어난 지혜로 간첩을 써서 대업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간첩을 쓴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손자는 말한다. 미묘하고 미묘하다(微哉微哉)! 간첩을 쓰지 않는 곳이 없다(無所不用間)!

無所不用間

무소불용간

간첩을 쓰지 않는 곳이 없다.

전쟁을 다루는 일뿐만 아니라 기업 현장에도 간첩은 활약한다. 이른바 산업스파이다. 산업스파이는 이해가 상반되는 국내·외 경쟁기업의 최신 산업정보를 입수하거나 교란시키는 사람을 말한다. 기업은 제품이나 시장정보 등을 수집하여 활용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경쟁회사에 대한 정보다. 특히 연구개발은 시간·자금·인력 등이 많이 소요되는데 이러한 부분을 쉽게 해결하기 위해서 산업스파이를 동원한다. 엘빈 토플러는 ‘권력이동’의 책을 통해서 이렇게 말했다. “권력은 무력에서 자본으로 그리고 미래에는 지식으로 이동할 것이며, 21세기에는 산업스파이가 가장 큰 산업 중 하나가 되고 정보전쟁과 날로 늘어가는 경제·금융스파이가 현재를 특징지을 것이다.” 그의 예견은 정확히 맞아 들어가고 있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국내 첨단기술의 해외유출 사건 발생 건수가 매년 두 배 이상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2011년 현재 누적 피해 금액은 400조 원을 넘어선 상태다. 400조원은 우리나라 한해 예산과 맞먹는 금액이다. 산업스파이는 외부의 사람에 의한 스파이도 있지만 내부에 있는 직원이나 간부급의 스파이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식별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평소부터 산업스파이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수시로 기밀유출여부를 체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손자는 중요한 말을 한다. “수년 동안 군대가 서로 대치하지만(相守數年), 결국에는 단 하루의 싸움으로 결판난다(以爭一日之勝).” 단 하루 만에 오랜 대치 국면이 끝날 수 있는 이유는 스파이가 제공한 결정적인 정보 때문이다. 이제 정신 차려 주변을 돌아보자. 회사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사람은 없는가? 사진기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없는가? 특별한 일이 없는 데도 갑자기 방문이 잦은 사람은 없는가? 별로 친하지도 않은 데도 자주 술자리를 권하는 사람은 없는가?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하는 앞집 아저씨는 혹시 간첩이 아닌가? 꺼진 불도 다시 보지만 아는 사람도 다시 봐야한다.

스파이도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얼굴을 가졌다.

無      所   不     用     間

없을 무    바 소   아닐 불     쓸 용    틈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