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든 가슴 중년우울증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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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호르몬 변화·빈둥지 증후군…

정신과 상담·치료

남성 환자의 2.5배

3명의 자녀를 둔 주부 이모(54)씨도 지난해 막내아들까지 타주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 시킨 뒤 정신적 공허함으로 인해 최근까지 상담치료를 받아 왔다. 김씨는 “남편은 업무와 저녁 약속이 많아 매일 늦게 들어오고 갈수록 대화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자녀들이 대학 진학 후 내 스스로의 삶이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다”며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친구들 중에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에 빠진 것을 본 뒤 겁이 나서 최근까지 상담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올 초 둘째까지 출산한 한인 김모(38)씨도 산후우울증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출산 후 급격히 노화에 이어 별다른 이유도 없이 낙심하고 눈물이 난다는 김씨는 육아를 도와주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기분을 참을 수 없어 결국 시댁의 도움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다.

김씨는 “산후 우울증이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둘째를 바라는 남편 때문에 직장도 그만두고 육아에만 전념하다 보니 우울한 기분은 더 심해지더라”며 “혼자 일하는 남편에게 미안해 참고 있었는데 갈수록 우울증 증상이 심해져 결국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한인 여성들의 불안증과 우울증이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적으로 한국인들의 우울증 발병이 남성보다 여성이 2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미주 한인사회의 경우 이민사회의 특수성까지 더해져 여성들의 정신건강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내 여성 우울증 환자는 45만 명으로 남성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또 우울증은 노년층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어 노인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대비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울증 진료 환자는 2012년 58만8,000명에서 2017년 68만1,000명으로 지난 5년간 15.8% 증가했다. 남성은 2012년 18만2,000명에서 2017년 22만6,000명으로 24.0% 늘었고, 여성은 2012년 40만6,000명에서 2017년 45만5,000명으로 12.1% 증가했다.

남성 환자 증가 폭이 크지만 지난 5년간 여성 환자는 남성의 2.1배로 많았다. 미주지역에서도 남성에 비해 우울증 치료를 받은 여자 환자수가 남성 대비 2.5배나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뉴욕한인봉사센터(KCS) 정신건강 클리닉이 지난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불안증이나 한 해 기준 우울증 등으로 치료를 받은 전체 한인 환자는 모두 198명으로 이 중 여성 환자는 70%에 해당하는 139명으로 집계됐다. 남성 환자는 여성 환자의 절반가량인 59명으로 전체의 30% 수준이어서 2.5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유독 남성들에 비해 여성 우울증 환자가 많은 이유로 육아와 출산, 그리고 호르몬, 사회활동 등을 꼽았다. 또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자녀를 타주 등으로 멀리 대학을 보내는 중년 여성들이 많아 이른바 ‘빈둥지 증후군’으로 인한 우울증 등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여성은 월경, 출산, 폐경 등으로 인해 호르몬 변화가 커질 때 감정의 흔들림을 경험할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특히 중년기 여성들이 폐경 전후에 겪게 되는 호르몬 변화가 우울증과 관련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육아·가사·직장생활의 병행, 시부모와의 갈등, 남성 중심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한 스트레스도 여성 우울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남성들은 음주나 골프 등 기분전환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여성의 경우 가족에 대한 의존도가 커 남성보다 여성 우울증 환자 비율이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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