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와 재정설계] 품격있는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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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송

재정전문가

RETIRING AMERICA FINANCIAL 시카고 대표

 

지난 2일 경남 창원의 한 고속도로 터널 부분에서 대형사고가 났다. 유류가 담긴 드럼통 196개를 싣고 달리던 5톤 화물트럭이 갑자기 가드레일에 부딪히면서 마주 오던 차량들을 향해 화물을 쏟아 냈다. 드럼통들은 충돌의 충격으로 불이 붙으면서 폭탄처럼 반대편으로 날아가 다수의 차량을 전소시켰다. 이 사고로 화물트럭 운전자를 포함해 3명이 숨지고 5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 그런데 사고차량의 운전자는 대형화물차 운전면허증도 발급받은 적이 없었다. 또한 이 분은 지난 2년간 이번 경우와 유사한 크고 작은 사고를 10회 정도나 냈었다고 경찰이 발표했다.

한 사람의 치명적인 부주의와 화물운송회사의 적절하지 못한 차량운영으로 인해 백주대낮에 날벼락을 맞아 애꿎은 생명들이 희생되었다. 본인도 운명을 달리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화물트럭의 운전자, 그 분은 무려 76세 되신 어르신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분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트럭을 몰았다고 한다. 돈이 없어 성능이 의심스러운 중고 화물트럭을 구입할 수 밖에 없었고, 사고당일도 피곤에 지친채로 운송을 나갔다는 것이다.

76세의 나이는 이미 은퇴하여 삶을 관조하는 시기이다. 세계여행을 즐기며 산해진미를 맛보지는 못할지언정, 자녀손들의 존경과 봉양을 받으며 친구들과 남은 생애를 즐기며 누려야 하는 나이다. 그런데 이 분은 생계를 이어야 하는 관계로 기름통 196개를 흔들거리는 트럭에 싣고서, 그것도 단단히 동여매지도 않은 채 일 터의 현장으로 나가야만 했다. 참으로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지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최근 노인국가로 급속도로 진입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어르신들의 삶에 대한 안타까운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오늘 아침에는, 은퇴자들의 10명 중 자녀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시는 분들이 약 7명이라는 보도를 보았다. 은퇴 후에 어르신들이 더 일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이 생계를 위한 일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은퇴를 했으나 생계를 해결할 길이 없고, 자녀들로부터 재정적 지원 역시 받을 길이 없어, 또다시 일터의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분들의 현실이다.

일본인 우치다메 마키고는 2015년에 [끝난 사람]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한국보다 조금 앞서 노인국가에 진입한 일본사회의 은퇴자들의 현주소를 고발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도쿄대 법학부를 나와, 대형은행에 입사한다. 젊은 한 때 승승장구하지만, 임원 진급에 실패해 자회사로 좌천된 이후 정년을 맞게 된다. 저자는 “회사는 젊은 직원을 엘리트라고 한껏 띄우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냉혹한 곳이다. 그에게 정년퇴직은 ‘생전에 치르는 장례식’과 같다”라고 쓰고 있다. 소설은 또한, “우리는 젊었을 때에 잘났건 못났건, 은퇴해 보니 모두가 ‘일렬횡대’로 서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제 우리 모두가 ‘품격있는 쇠퇴’를 맞이하려면 나름대로 자기의 삶을 예상하고 지혜롭게 준비해야 한다.”고 일갈하고 있다.

품격있는 쇠퇴라…번역이 다소 어색하고 잘 들어보지 못한 표현이다. 하지만 백세시대를 이미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 삶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돈 문제이다. 앞서 언급한 한국사회의 사건사고 역시 은퇴자들의 재정적 결핍으로 인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국가도 책임을 지고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품격있는 쇠퇴를 맞이하게 되는 당사자들 역시 자신의 삶의 질과 인생의 품위가 떨어지지 않도록 지혜롭게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품격있는 쇠퇴’를 생각하니 역시 유대인들의 생활방식이 떠 오른다. 세계경제를 주름잡는 유대인들, 아니 우리 주위에 은퇴한 유대인들을 보더라도, 그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는다. 그들은 돈을 굉장히 소중한 것,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은 것, 있으면 인생이 좀 더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해도 청렴한 사람이 좋다”는 번드레한 말은 하지 않는다. 그들이 늘 기억하고 있는 격언 중에 “텅 빈 지갑만큼 무거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어릴 적부터 돈에 대한 교육을 부모와 함께 하는 식탁에서부터 철저하게 받았다. 우리도 그들처럼 살 수는 없을까? 우리도 그들처럼 품격있는 쇠퇴를 맞이할 수는 없을까?

재정설계는 이러한 품격있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