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이래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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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한미자유연맹 부총재)

갑자기 쌀쌀해져가는 미국중서부의 날씨가 곧 겨울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시카고와 미국의 대도시들은 보통 위도가 함경북도 정도의 위치해 있어 유달리 겨울이 빨리 온다. 추워져가는 날씨속에서도 열정적으로 북한인권개선운동을 하며 사는 미국 탈북민이 있어서 큰 용기가 된다. 그 주인공은 바로 미국 유타주에 거주하면서 국제정치 전문가의 길을 걷고 있고 필자가 수년전 시카고에도 초청한바 있는 저명한 북한인권운동가인 그레그 스칼라튜가 이끄는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에서 북한인권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탈북민 김두현씨이다.

2009년 북한 신의주에서 탈북한 김두현씨는 한국에서의 5년간의 생활을 거쳐 국제정치학과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미국으로 아내와 함께 유타주에 소재한 한 대학으로 유학을 온다. 비록 북한에서는 미국이 적이라고 교육받았지만 한국에서 있으면서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고 미국의 교육이 세계최고수준이라는 말을 들고 미국유학을 결심하게 된 두현씨는 문화가 낯설고 언어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국제정치전문가의 꿈을 위해 용기를 가지고 미국에 온다.

두현씨는 북한에서 부터 정치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아버지가 사소한 인권관련문제를 얘기하다가 감옥에 가게 되고, 반역자의 아들로 낙인찍혀서 대학이나 군대 또한 갈수 없었다고 한다. 북한의 김씨 왕조체제는 철저한 계급사회와 반동분자들 그룹들을 만들어놓고 조금이라도 사회에 반대하는 세력들이나 체제비판을 하는 주민들은 당사자와 9촌까지 모두 정치범수용소나 교화소에 수감해버리거나 두현씨의 경우처럼 상급학교를 진학시키지 않고 사회의 제일 밑바닥 일을 강제로 시킨다.

두현씨가 북한인권운동과 국제정치 전문가로의 길을 걷게된 결정적 계기는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이다. 아버지깨서는 사소하게 북한체제비난을 했다가 7년형을 선고받으시고 감옥에 갔다가 2년만에 모진 고문과 영양실조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두현씨 가족이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오려고 했었는데도 북한당국에서는 아직도 형기가 5 년이나 남았으니 시신을 줄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수용소 담당자들은 형기를 다채워야만 시신을 찾을수 있는것이 북한법이라고 이야기 했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그 사건을 통해서 나름 북한체제에서 순응하며 살았던 김두현씨를 탈북하게끔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김두현씨가 워싱턴 소재 북한인권위원회에 근무하게 된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두현씨는 대학졸업후 국제정치전문가와 북한인권가로서의 현장경험을 쌓기 위해 현재 북한 인권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북한 사회와 인권상황을 연구. 조사를 통해서 리포트를 작성해서 유엔과 미국정부에도 자료를 제공해서 대북정책 수립에 기여하고  있다.

김두현씨 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북한인권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북한당국은 철저히 부정하지만 인공위성으로 나타나고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탈북한 탈북자들과 탈북한 수용소 관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총 10개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십만명이 감금되어 짐승처럼 대우받으면서 어떤 종류의 사소한 실수와 잘못으로도 공개처형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수용소에 수용된 이들은 정말 본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고 한반중에 온가족이 체포되어 트럭에 실려가 수용소에 수감된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특히 기독교를 믿거나 성경을 소지하다가 잡히면 김정은 정권의 반체제 집단으로 몰려 극형을 받는다고 한다. 최악의 북한인권을 더이상 눈감아서는 않된다. 적화통일을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핵개발을 하고 있는 북한정권의 최악의 인권상황을 우리가 무시한다면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인권도 짓밟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