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연금개혁’…프랑스 가치 훼손 말라” 격렬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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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전국 240곳서 대규모 집회 열려…노년 여유로운 현행 제도에 자부심, 시민 권리에 사회적 합의 없어 불만

프랑스 국민의 약 70%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을 반대한다. 응축된 불만은 31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 열리는 연금 개혁 저지 시위에서 화산처럼 터졌다.

‘마크롱 안’의 핵심은 “연금 수령 시점인 정년퇴직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올리고, 연금 100% 수령을 위한 근속 연수를 현행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린다”는 것이다. “더 오래 일하라”는 뜻이니, 동의하기 쉽지 않다.

한국일보가 파리에서 확인한 민심은 “더 일하는 게 싫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분노엔 다층적 이유가 섞여 있었다. 그중심엔 ‘일과 삶의 균형 추구’, ‘시민들이 일군 사회적 합의의 존중’, ‘소수자·약자에 대한 배려’ 등 프랑스인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마크롱 대통령이 훼손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정부의 연금개혁 강행을 막기 위한 2차 총파업 및 시위가 전국 약 240곳에서 진행됐다. 주요 노동조합 8개가 모두 참여하는 초대형 시위다. 참가 인원은 최소 100만~120만 명일 것으로 관측됐다.

시위 규모가 1차 시위(19일)와 비슷해도 강도는 더 세질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1차 시위에서 민심이 확인됐음에도 마크롱 정부가 타협 여지를 보이지 않아 분노가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시위대가 ‘돌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철통 대비에 나섰다. 시위 현장에 약 1만 1,000명의 경찰 동원을 예고했다.

수도 파리엔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다. 시위가 열리는 ‘이탈리아 광장’엔 30일부터 뜨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광장 주변엔 “(64세가 아닌) 60세에 은퇴하게 해달라”고 적힌 노조의 전단이 나부꼈다. 시위가 강렬할 것이란 예고였다. 경찰들은 광장 주변을 돌며 시위대의 예상 동선과 위험물 여부 등을 확인했다.

프랑스인들의 분노엔 여러 결이 있었다. 우선 ‘마크롱 안’이 소중한 ‘일과 삶의 균형’을 해칠 것이라고 봤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해 노년을 여유롭게 보내는 현행 연금제도를 프랑스 인들은 ‘기본값’으로 여긴다. ‘자부심’도 대단하다. 에르브씨는 “우리는 노인이 평화롭게 살수 있는 현재의 제도에 많은 애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연금개혁이 ‘노동시장 약자’의 권리를 더 많이 침해할 것이란 의견도 많았다. 노조는 “‘더 오래 일하라’는 연금개혁은 정신적·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반발한다. 교육을 받을 기회가 충분하지 않아 노동시장에 일찍 뛰어 들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 등이 잠재적 피해자다.

특히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점은 정부도 수긍한 부분이다. 정부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마크롱 안’을 적용했을 때 남성은 5개월 더 일하게 되지만, 출산 휴가 등으로 인한 업무 공백이 큰 여성은 7개월을 더 일해야 한다.

불평등의 문제도 있다. 자산이 적을수 록 연금 수령 지연 타격이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인 고용을 활성화하겠다는데, 일자리가 한정된 상황에서 노인고용을 늘리면 청년에게 할 당되는 기회가 줄어든 다는 것도 문제다.

연금개혁의 효과성에 대한 의문도 상당했다. 저출생·고령화 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연금제도는 언젠가 또 손질을 해야 하므로, 굳이 무리해서 개혁을 추진할 필 요가 없다는 게 많은 이들의 생각이었다.

대학생 아폴린(20)씨는 “연금제도가 존재하는 한 고통은 유예되는 것에 불과하다”며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