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판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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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담임)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가장 지나치기 쉬운  말씀이면서도  많은 오해를 받아온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에 관해 가장 널리 퍼진 오해는 예수님이 ‘모든 비판을 일절 금지하셨다’는 주장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구절만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예수님은 모든 비판을 금지 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너는 이웃의 상황에 처해 볼 때까지는 이웃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 잠언 17:9에는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17:9),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 19:11)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남을 절대로 비판하지 말라’고 설교하는 사람도 남을 비판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만약 비판이 절대로 금지된다면, 비판하는 사람도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모순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비판 금지는 악행을 허용하는 것이 되고 불의에 굴종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비판 능력을 감소시키거나 잘못을 못 본 체하거나 진실과 오류,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도록 해서는 않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분명하게 판단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죄악과 불의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회개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일체의 정당하고 적법한 비판까지 막는다면, 말씀하신 의도를 그르치게 될 뿐만 아니라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힘센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서 결국은 힘이 곧 정의가 되는 억울하고 불의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한 마디로 “남을 비난하기를 좋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형제의 티를 지적하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눈 속에 들보가 들어 있지 않은지 살펴 보아야하고, 만약 그렇다면 그것을 빼낸 후에라야 그는 사물을 밝히 볼 수 있게 되고, 그래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도 지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함부로 남을 비판해서는 않되는 이유를 ‘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마7:1)’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로마서 2:1도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더욱 남을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 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야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대로 주님 앞에서 심판(판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말, 행위에 대한 심판도 심판이지만 형제를 판단한 일에 대해서도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무시하느냐? 이는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설 것임이니'(롬14:10).

자신도 더 큰 허물과 잘못을 범하기 쉬운 연약한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이기에 남도 기꺼이 용서하고 용납하기를 힘써야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긍휼히 여기는 자라야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기'(마5:7)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