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가운데 소통하며] 당기시오. 미시오.

1486

박민수   박민수 하람교회 목사

 

 

한국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미국에서 여러분들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이곳에서 많은 분께 도움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어려운 일들을 잘 철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정서는 개인적인 부분보다는 ‘우리’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디지털 문화의 발전과 개인 통신 기기들의 발달로 인해 개인적인 것이 우선시되는 문화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것들에서 평안을 찾게 됩니다. 한국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 장인, 장모님을 방문했습니다. 둘째 아이와 함께하는 방문이었는데, 점심을 먹고 온양에 있는 온천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오래 전 한국을 떠나기 전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기에 너무나도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아이와 함께 노천탕으로 나가다가 문득 손잡이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당기시오.’ 왠지 무뚝뚝하고, 명령조의 그 글귀가 너무나도 반가웠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예전 것을 기억하는 아날로그의 감성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노천탕에서 실내로 들어오는 방향에도 반대와 똑같은 ‘당기시오.’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당기시오’가 한쪽에 쓰여 있다면, 반대쪽에는 ‘미시오’라고 쓰이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노천탕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동안에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실내 외를 다닐 수 있는 유리문은 제법 무게가 나갑니다. 목욕을 위해 벗은 맨몸으로 문을 여닫고 움직인다는 것이 ‘안전함’을 먼저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니 무거운 유리문을 여닫을 때,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사람들의 본성은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라면 자기 쪽으로 ‘당기는’ 것보다 ‘밀어내는’ 습성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맨몸으로 다니는 문을 그 ‘본성’에 맡겨버린다면 아마도 작고 큰 충돌이 일어 날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가 문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면 사고의 위험은 많이 줄어 들것입니다. 더구나 자기 앞으로 당기는 것이니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입니다. 그 문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문을 여닫는 방법이 ‘당기시오.’로 붙여지게 된 것은 타인을 생각하고, 사고를 줄이는 아주 현명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목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람들끼리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문을 열고 닫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관계의 문을 여닫을 때, 얼마나 많은 ‘당기시오.’가 필요한가를 생각했습니다. ‘미시오’보다는 ‘당기시오.’를 행할 때 유쾌하고 즐겁고 상쾌한 관계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지금 자녀들과 또는 부부간에 닫힌 문을 열어야 합니까? 그렇다면 먼저 내 쪽으로 ‘당기시오.’를 실천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