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8-2017] 성경구절 이야기

1269

무디는 배우지 못한 소극적인 소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시카고를 미국을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고백합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가슴이 타고 오장육부가 다 타는 것처럼 뜨거워져서 견딜수가 없어서 떼굴떼굴 얼마를 굴렀는지… 하나님… 제발… 그만 하십시오. 제가 죽겠습니다.” 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옥스퍼드 출신의 엘리트 선교사였습니다.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척박한 미국땅에 가서 2년이나 선교사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선교사로서 실망하고 돌아오는 가운데 풍랑을 만나고  그 풍랑속에서 자신은 죽을까봐 두려워하고 있는데 그 폭풍속에서 한쪽에서 찬송을 부르고 있는 모라비안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나? 똑같은 신앙인인에… 나는 목사요 선교사인데 두려워하는데… 어떻게 저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찬양을 하고 있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령의 충만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귀국하여 부흥회에 참여했다가 성령의 뜨거운 불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가 영국을 변화시키는 자로 위대한 신앙인으로 살았습니다

아프리카의 선교사였던 리빙스턴은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원주민들의 병을 고쳐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사역에는 성령의 강한 역사가 나타났는데, 친구였던 베네트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이런 상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이곳에 와서 많은 일을 겪었네. 지금은 20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곳에서 온 병자까지 치료하고 있지. 여기 사람들은 수술할 때 아주 잘 참네. 부인들도 직경 1센티미터나 되는 상처를 칼로 째도 전혀 울지 않지. 하지만 이들도 성령의 역사 앞에서 만큼은 견디지 못하네. 어떤 사람은 아이처럼 소리쳐 울기도 하고,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면 교회 밖으로 뛰쳐나가 도망가듯 울면서 질주하기도 하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시 안 올 것처럼 도망간 사람들이 다음 집회에 또 출석한다는 사실일세. 그리고 이런 과정을 몇번 거친 사람들은 순순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라는 편지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성령의 강한 바람은 양심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죄의 문제를 건드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책을 받아 괴로워 견디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마음 속에 죄를 깨닫게 하므로 죄를 고백하게 하고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 생명이 소생하므로 하나님과의 교통이 다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907년 대부흥운동은

1903년 원산에서 선교사들이 모여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은 데서 출발했습니다. 이 불이 서울의 정동감리교회와 승동교회로, 평양의 남산현교회와 장대현교회, 남문교회로 옮겨 붙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평양 장대현교회의 부흥은 놀라웠습니다. 2000명이 넘는 신자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통회 자복하는 바람에 그들의 기도소리가 교회당 지붕을 날려 버릴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어떤 어머니는 피난을 가다가 자기 아이를 강에 빠뜨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 온 죄를 고백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간통한 죄를 자백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둑질, 간음, 미움, 질투 등 온갖 더러운 죄를 한꺼번에 토해 놓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이 두려워서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뛰쳐나가 도망을 치다가 무슨 강력한 힘에 이끌려 도로 교회로 돌아와서 뒹굴며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죄를 토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거꾸러져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춥기로 유명한 평양의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저녁 7시에 시작된 부흥회는 새벽 2시가 되어도 끝날 줄을 모르고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은혜에 취해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일로서 당시에는 유교와 불교가 나라에 널리 장려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성도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통회하고 자복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이 불길이 한국에 넘쳐나 오늘날 한국교회에 부흥을 일으키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면 우리 안에 온갖 더럽고 흉악한 죄들이 드러나고 모든 육체적 소욕이 한꺼번에 태워지는 것입니다.

성 이냐시오는 길을 다닐 때나 집에 있을 때나 무엇을 하더라도 언제나 마치 살얼음판을 걸어가듯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이를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여 이냐시오에게 물었습니다.  “주교님, 답답하지도 않으십니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냐시오는 웃음을 띤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성령을 모신 몸일세. 내 몸은 곧 성전이란 말이네. 그러니 어떻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으며 깨끗하게 살지 않을 수 있겠는가?”<빛과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