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고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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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가끔 듣던 단어가 하나 있다. ‘고마니’라는 말이다. 어머니께서는 가끔 이런 말을 하셨다. ‘고마니가 붙었다.’ 어머니께는 가끔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그 돈을 모으려고 하실 때면 여지없이 돈을 꼭 써야만 하는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누이들의 신발이 닳아서 새 신발이 필요하던지, 나에게 새 가방이 필요하게 되는 것같은 경우 말이다. 결국 그 돈을 모으지 못하고 쓰게 되시면 어머니는 꼭 이런 말을 하셨다. ‘고마니가 붙었구나’, ‘내 복에 난리 나겠냐’

고국의 충청남도 공주에 가면 ‘고마니 고개’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런 지명이 붙게된 데는 전설이 하나 있다. 옛날에 이 곳에 외아들을 가진 다섯 집이 있었단다. 그런데 전쟁이 났다. 그래서 이 마을의 외아들 다섯 명은 전쟁터로 나간다. 나중에 오랜 전쟁이 끝났지만 다섯 아들중에 아무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러한 유래에서 이 마을 사람들은 외아들 다섯명이 넘어간 고개를 ‘고마니 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개를 넘어간 아들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이제 그만이다’라는 뜻으로 이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 고마니는 ‘그만’ 이라는 말의 사투리다. 그러니까 ‘딱 거기까지 만이다’ 라는 말인 것이다.

살면서 가끔 ‘고마니’라는 말을 피부로 느낄 때가 있다. 부부중에 한사람의 수입이 아주 많으면 다른 한사람은 대부분 일을 하지 않는다. ‘그만’하면 식구가 모두 먹고 살만하기 때문이다. 만일에 부모가 모두 돈을 많이 벌면 그런 부모를 둔 자식들은 돈 욕심이 별로 없다. 그만하면 자기까지는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 열심히 일을 해서 어느정도 재산을 모은 분들은 대부분 나이들어 더이상 돈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객 중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일만 하신 분이 계신다. 정말 밤이고 낮이고 일만 하셨다. 그렇게 성실히 20년 정도 일을 하시더니 어느날 일을 그만 두셨다. ‘고마니’가 붙은 것이다. 그리고는 한 5년동안 아무 일도 안하셨다. 몸도 마음도 지친 것이다. 이렇게 휴식기간을 지내고 그분은 지금 다시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신다. 그 분께 나타났던 ‘고마니’는 그분 인생에 휴식을 준 감사한 고마니다.

어렸을 때는 이놈의 ‘고마니’때문에 우리 집이 맨날 가난했나 싶었다. 그래서 결심을 한 적도 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고마니’가 붙지 않게 하리라. 그리고 매일 더마니(더 많이)를 외치며 쉬지 않고 죽을 때까지 열심히 일하리라.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열심히 사시는 분들을 존경하고 본받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보니 ‘고마니’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매일 더마니(더 많이)를 외치며 산다. 한푼이라도 더 벌고, 한개라도 더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 우리 것인가? 살아 있는 동안 잠시 빌려쓰다가 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과연 죽을때 정말 편히 떠날 수 있을까?

미국의 원주민이었던 체로키 인디언은 딱 자기가 먹을만큼만 사냥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잡으면 다시 놓아준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존중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자연에 흔적을 가장 적게 남기는 범위내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 가는 법을 알았던 것이다. 어찌보면 ‘고마니’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있다. ‘고마니’는 남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를 말한다. 적당한 정도로 우리에게 채워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더마니(더 많이) 욕심을 부릴 수도 있지만, 고마니도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