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데이터가 찾아낸 공포와 안전띠

1928

손헌수<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시카고>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영국에서 독일로 전투기들이 출격한다. 독일 본토를 공격하고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폭탄을 잔뜩 실은 채 말이다. 그런데 통계를 보니 영국에서 독일로 낮시간에 출격하는 전투기들의 임무중단 비율이 20 퍼센트나 되는 것이었다. 전시에 훈련된 비행사들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중단률이 지나치게 높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맥나마라’라는 군인은 그 이유를 찾아 나선다. 겉으로 알려진 이유는 전자기기의 고장, 불규칙한 무전상태, 조종사의 좋지않은 몸상태등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유들은 대부분 조종사들이 한 답변들을 가지고 얻어낸 결과었다.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맥나마라는 조종사들이 변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조종사들은 자신들이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각종 변명을 늘어 놓았지만, 사실 그들이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진짜 이유는 ‘공포’ 때문이었던 것이다. 낮시간에 독일로 출격한 상당히 많은 전투기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상당수의 전투기 조종사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조종사들은 자신들의 공포 뒤에 숨어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각종 다른 이유들을 찾아 냈던 것이다. 맥나마라는 이 사실을 지휘관에게 보고한다. 당시에 고지식하고 악명 높기로 소문난 지휘관 커티스 르메이(Curtis LeMay)는 자신이 직접 전투에 나선다. 그러면서 폭격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도망치는 조종사는 반드시 군법회의에 넘기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 일이 있고나서 조종사들의 임무중단 비율은 엄청나게 떨어진다.

로버트 스트레인지 맥나마라(Robert Strange McNamara)는 군에 입대하기 전에, UC 버클리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회계학을 가르치던 젊은 교수였다. 그러던 중에 2차대전 소식을 듣고 그는 자원입대를 하게 된다. 그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뛰어난 능력 덕분에 육군 항공대의 통계청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종사들이 ‘공포’ 때문에 높은 임무 중단율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를 낮추는 성과를 올리게 된다. 전쟁이 끝나자, 맥나마라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자동차 회사인 포드사에서 그에게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웃을 제의한다. 포드사는 그의 통계능력을 자동차 산업에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맥나마라는 자동차의 연비나 기본설비에 관심이 많았지만, 특히 자동차의 ‘안전’에 가장 관심이 많았다. 1950년 한해에 미국에서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4천명이었다. 사망자 숫자는 오늘날과 비슷하지만 당시에는 자동차당 주행거리가 짧았다. 주행거리로 비교해 보면 당시의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는 오늘날에 비해 마일당 다섯배나 높은 숫자였다.

맥나마라는 자동차 사고 사망률이 높은 이유를 따져보기로 했다. 자동차의 결함, 잘못된 도로 상황, 운전자의 부주의등 사고의 원인은 다양했다. 하지만 맥나마라는 인간의 신체가 자동차 내부의 딱딱한 구조에 비해서 너무나 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동차 사고가 나면 많은 운전자들이 핸들에 가슴이 뚫렸다. 그리고 조수석에 탄 사람들은 계기판이나 앞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하는 것이었다. 맥나마라는 처음에 자동차 내부 재료를 부드러운 자재들로 바꾸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곧 그는 아예 자동차에 탄 사람이 자동차와 부딪히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당시에 이미 비행기에는 안전밸트가 있었다. 그는 여기에 착안해서 포드에서 만드는 모든 자동차에 안전밸트를 달도록 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자동차에 안전밸트를 매는 것을 생활화 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60년대 중반, 미국 정부는 안전띠를 법으로 의무화했지만 1980년대까지도 운전자의 21퍼센트정도만 안전띠를 맸다. 어떤 자동차 회사는 “포드는 안전띠를 팔지만 우리는 자동차를 판다’고 비아냥 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 안전밸트는 우리 생활에 완전히 정착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맥나마라는 이런 성과로 포드에서 직급이 수직 상승한다. 그리고 그는 훗날 미국이 베트남과 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미국의 국방부장관을 역임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냉정한 사람이라고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못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는 어떤 판단을 내릴때 감정에 치우치거나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았다. 단순히 인기에 영합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정확한 통계에 의존을 해서 의사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