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맨 케이브(Man C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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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산 아래 ‘하꼬방’에 살았다. 집 전체가 몇평이나 되느냐고 어머니께 물었던 적이 있다. 일곱평쯤 될거라고 말씀하셨던 것같다. 그 일곱평 안에 방 두개, 부엌, 재래식 화장실, 그리고 수돗물이 나오는 마당이 있었다. 집에는 나를 빼면 전부 여자들만 살았다. 어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누나 네사람, 여자만 6명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쯤부터 남자랍시고 방한칸을 나 혼자 사용했다. 여자 6명이 좁디 좁은 다른 방한칸에서 함께 지냈다. 가장이었던 어머니는 직장에 다니셨다. 외할머니가 집안 살림을 하셨다. 중학생쯤 되었을 때, 외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 왔다. 좁디 좁은 집에서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와 함께 사춘기를 보냈다. 끔찍했다. 얼른 자라서 그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머니와 가끔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내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작은 ‘방 하나’를 마련해 주지 못했던 것을 아직도 못내 아쉬워 하신다. 외할머니에게 당신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치매가 조금 덜했을 수도 있었을거라고 생각하시는게다. 누나들은 또 어떤가. 매일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좁은 방에서 같이 살기가 쉬웠을까? 그래서인지 누이들은 다들 일찍 시집을 갔다. 아버지도 저 좁은 공간이 숨이 막혀 집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말할 필요가 없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최소한의 자기 공간이 필요하다.

어린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라. 아이들은 텐트나 옷장같이 막혀있는 곳에 계속 들어가고 싶어한다. 어딘가로 숨고 싶어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가 숨바꼭질이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공간이 없으면 종이 상자에라도 들어가고 싶어한다.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서일까? 자꾸 어딘가로 숨어들어간다. 남자들도 자기만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얼마전에 ‘남자는 위기가 찾아오면 동굴로 들어간다’는 문구를 접했다. 잠시 후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혼자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한때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다. 이 책에도 남자는 문제가 생겼을 때 동굴에 들어간다는 말이 나온다. 요즘 특히 뜨고 있는 인테리어 트렌드가 바로 ‘맨 케이브’라고 한다. 맨 케이브는 남자의 동굴이다. 동굴처럼 독립성이 보장되면서 남자가 자기만의 생활패턴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인테리어의 목표란다. 집의 지하실이나 창고, 작업실 등이 대상이다. 남자들은 이곳에 자기가 좋아하는 콜렉션을 모으거나 게임, 오디오, 극장 등을 만든다. 이곳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왜 맨 케이브를 좋아할까?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여자는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것이 위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문제에 부딪히면 혼자 있고 싶어 한단다. 자기만의 공간으로 일단 숨어들어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외로움도 느끼지만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다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동굴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동시에 무언가 해야겠다는 열정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일년에 반 이상은 집에서 나 혼자 지낸다. 텅빈 집에 혼자 사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 집이 동굴이다. 하지만 이렇게 살면서도 나는 또 다른 맨 케이브를 꿈꾼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나만의 공간을 숨겨두고 가끔 너무나 지칠때 아무도 몰래 그곳에 들어가 혼자 쉬고 싶다. 그러고 보면 맨 케이브는 단순히 공간만의 문제는 아닌 것같다. 혼자만의 시간도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맨 케이브는 여러가지 목적이 있다. 어떤 남자는 그곳에 혼자 있기도 하지만 어떤 남자는 그곳에서 취미 생활을 한다. 어떤 남자는 그곳에서 다른 남자들과 어울리기도한다. 과거 오랫동안 이 세상의 여자들이 원하는 남자는 강하고 남성적이며 자기를 보호해 줄 수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자들은 감성적이며 여자를 잘 이해해 주는 남자들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바뀌는 트렌드에 당황한 남자들은 또 동굴을 찾는다. 좁은 공간에서 혼자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에게 동굴은 탈출의 대상일 수도있다. 하지만 매일 세상에서 거짓 웃음을 지으며 생존을 위해 공연을 하고 있는 광대남들은 오늘도 자기 혼자만의 동굴을 그리워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