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무엇이 공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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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변호사, 회계사, 택슨 대표)

-누진세율 적용을 위한 Illinois 주 헌법 개정 주민 투표에 대한 고찰 –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정부의 작은 위로이자 정성입니다.” 전국민에게 통신비 2만원씩을 주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한 말이다. “누구 돈으로 누가 인심을 쓰는가?”라는 논쟁은 하지 않겠다. 통신비 지원이 어떤 논리에서 나왔는 지만 살펴본다. 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이 만남을 줄인다. 대신 통화를 더 많이 한다. 정부는 대면접촉을 금지하고 전화통화는 장려하고 싶다. 그래서 모든 국민들에게 2만원씩 통신비를 지급해 준다. 이것이 겉으로 드러난 논리다. 하지만 숨은 논리가 하나 더 있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보편적 복지를 추구한다. 보편적 복지는 돈이 많이 든다. 그런데 정부에는 돈이 없다. 그래서 이제는 선별적으로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보편적’ 복지를 추구했던 정부가 자기모순에 빠진다. 그래서 전국민에게 통신비 2만원 지급이라는 작지만 ‘보편적인’ 정책을 끼워 넣기로 한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국민 모두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모든 학생에게 무료급식을 주는 것이 좋은 예이다. 반대로 ‘더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은 복지를”제공하는 것이 선별적 복지다. 복지정책은 정부가 돈을 쓰는 것이다. 돈을 쓰려면 먼저 돈을 거두어야 한다. 세금이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보편적 복지주의자들은 고정세를 좋아할 것 같다.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복지혜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니,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세율을 주장할 것만 같다. 하지만 반대다. 복지는 모두에게 같은 정도로 베풀자는 보편적 복지론자들이, 세율은 차등 적용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누진세다. 누진세는 고소득자에게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이다. 많이 벌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라는 것이다. 사실 많은 나라에서 누진세를 제도화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 소득세도 누진세다.

누진세냐 고정세냐?

일리노이 주에서는 지금 누진세(Graduated rate tax) 지지자들과 고정세(Flat rate tax) 지지자들 간에 싸움이 진행중이다. 일리노이 주의 현재 소득세율은 고정이다. 2020년 현재, 일리노이 주의 개인소득세율은 4.95%이다. 만 불을 버는 사람이나 백만불을 버는 사람이나 세율이 똑같다. 만 불을 버는 사람이라면 대략 5백불을 세금으로 낸다. 백만불을 벌면 세금이 대략 5만불이다. 물론 고정세율 아래서도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낸다. 하지만 누진세율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고소득자가 저소득자에 비해 더 높은 세율을 적용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진세에 대한 오해

이쯤에서 누진세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자. 누진세에 대한 가장 커다란 오해는 이렇다. 예를 들어, 만불까지 소득에 대해서 세율이 10%라고 하자. 그리고 만불에서 2만불 사이의 소득세율이 20%라고 가정해 보자. 이때, 만 불을 번 사람의 세금이 천불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렇다면 만 천불을 번 사람의 세금은 얼마일까?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오해를 한다. 만 천불 전체에 20%인 2,200불이 세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만 불 번 사람은 세금으로 천불을 내고 9천불이 남는다. 반면에 만 천불을 번 사람이 세금으로 2,200불을 낸다면 수중에는 오직 8,800불밖에 남지 않는다. 더 많이 번사람이 세금때문에 오히려 더 가난해지는 것이다. 공부를 아주 많이 한사람들 중에 특히 이렇게 믿고 계신분들이 많다. 이것은 누진세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만불에서 2만불 사이의 소득세율 20%는, 만 불을 넘는 소득에 대해서만 해당이 된다. 즉 만 천불을 번 사람의 세금은, 만불까지는 10% 세율, 만 불을 넘은 천불에 대해서만 20% 세율의 적용을 받는다. 계산해 보면, 만 천불을 번사람의 세금은 1,200불이 되는 것이다. 높은 세율은 오직 추가 소득에 대해서만 적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진세제도 때문에 더 많이 번 사람의 가처분 소득이 더 적게 번 사람보다 적어지지는 않는다.

일리노이 주의 움직임

미국에는 50개주가 있다. 이중에 현재 일리노이 주처럼 고정세율을 부과하는 주는 일리노이 주를 포함해서 11개다. 7개주는 개인소득세가 없다. 나머지 32개 주에서는 대부분 누진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일리노이 주 헌법은 소득세를 고정세율로 한다고 명시하고있다. 일리노이 주의 헌법 9조 3항에는 “A tax on or measured by income shall be at a non-graduated rate.”이라고 적혀 있다.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은 누진세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이 조항을 고치기 위해 일리노이 주의회는 2019년에 이미 의결을 마쳤다. 일리노이 주 상원과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다. 따라서 상원과 하원은 각각 60% 이상 표를 얻어 이미 누진세 안건을 2020년 11월 3일에 있을 주민투표 찬반에 부치기로 결정한 것이다. 11월 3일은 미국 대통령선거일이다. 이날 일리노이 주에서는 일리노이 주 주민투표가 동시에 진행된다. 주민투표의 질문은 이렇다. “당신은 일리노이 주의 법을 누진세로 바꾸는데 찬성하십니까?”  누진세로 변경에 동의하면 ‘Yes’에 투표하면 된다. 누진세에 반대하고, 현재처럼 고정세를 원한다면 ‘No’에 투표를 하면 된다.

11월 3일 주민 투표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Yes’에 투표를 해야 법이 바뀔까?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전체인구의 50%, 또는 이 질문에 답변한 사람의 60% 이상이 “Yes”에 투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11월 3일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일리노이 주민이 5백만명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이 중에 4백만명이 위의 질문에 답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5백만명 중에 절반인 2백5십만명 또는 4백만명의 60%인 2백4십만명 중에 적은 숫자인 2백40만명 이상이 “Yes”에 투표를 하면 누진세로 법이 바뀌는 것이다.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누진세로의 변경을 원하고 있을까? 2019년 3월과 9월에 각각 일리노이 주민 천명 남짓에 대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두 여론 조사 모두 평균 67%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누진세로의 변경을 찬성했다.

프리츠커 주지사

민주당원인 현 주지사는 누진세 지지자다. 엄청난 부자인 그는 주지사 선거 공약으로 누진세를 내걸었다. 누진세가 “공정한(Fair)” 세금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는 하얏트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유태인 집안의 상속자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자인 주지사다. 또한 뉴욕시장이었던 블룸버그에 이어 역사상 두번째로 부자인 정치가다. 그런 그가 자신의 개인 돈 5,600만불을 광고비로 쓰면서 일리노이 주 소득세를 누진세로 바꾸려고 한다. 현재 일리노이 주의 상원과 하원은 모두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의회에서 쉽게 누진세제도가 통과된 것이다. 그는 엄청난 부자인 자신과 저소득자인 사람과 똑같은 세율의 적용을 받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일리노이 주에 누진세가 적용되면 97%에 해당하는 대다수에게는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오직 3%의 최상위 층만 부담이 커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공정한 세제가 확립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엔 주지사를 반대하는 쪽의 의견을 들어보자. 고정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지사가 주장하는 “공정”은 그저 그럴싸한 포장이라고 말한다. 주지사가 누진세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 세금을 올리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또한 누진세가 적용되면 실제로는 중산층과 소규모 사업체가 더 많은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한다.

투표 후엔 어떻게 되나? 

“Yes,”가 많아서 주지사가 이기면 어떻게 될까? 2021년부터는 누진세율이 적용될 것이다. 2019년에 이미 일리노이 주 의회에서 통과된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납세자가 독신이든 기혼이든 연간 수입 10,000불까지는 4.75% 세율의 적용을 받는다. 만 불 이상 10만불까지는 세율이 4.9% 다. 그리고 10만불에서 25만불까지 소득에 대해서는 세율이 4.95% 이다. 이 구역 세율은 현재 고정세율과 같다. 이렇게 되면 연간 소득이 25만불 이하인 사람들까지는 현재보다 조금 유리하다. 하지만 25만불 이상 소득에 대해서는 세율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독신자의 경우 25만불에서 35만불사이의 수입에 대한 세율은 7.75%다. 35만불에서 75만불 사이 소득의 세율은 7.85%다. 독신자의 75만불이 넘는 소득에 대한 세율은 7.99%다. 법인세율은 0.99%가 올라간다. 현재 일리노이 주의 법인 세율은 7%다. 이것이 7.99%로 올라가는 것이다.  “No”가 많아서 주지사가 지면 어떻게 될까? 그는 교육비와 보안, 복지관련 예산을 줄이겠다고 한다. 또한 개인소득세율을 현재 4.95%에서 5.95%로 1% 올릴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무엇이 공정인가?

과연 어떤 것이 더 공정한가? 조세제도는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완벽하게 공정하지는 않았다. 근대국가가 출현하면서 세금은 처음에 ‘응익 원칙’에 입각해서 부과되었다. 응익 원칙이란 이익에 대응해서 세금을 걷는다는 말이다. 고속도로 통행세와 같이 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직접 걷는 방식이다. 하지만 오늘날 정부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사업 중에는 이익이 누구에게 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게다가,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개인들 사이에 세금을 낼 수 있는 능력에 커다란 차이가 생겼다. 그래서 최근에는 ‘응능 원칙’에 따른 납세가 일반화되었다. 응능 원칙이란 낼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해서 세금을 부과한다는 말이다. 누진세 제도가 대표적으로 응능 원칙에 입각한 세금이다.

미국의 연방소득세는 똑같은 수입이라도 기혼자보다 미혼자에게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한다. 응익 원칙에 따라 생각해보면 미혼자에게 불합리하다. 미혼자는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도 작고, 도로나 공공 장소도 자기 혼자만 이용하며, 각종 편의 시설도 부부들보다는 적게 이용할 것이다. 그런데 왜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가? 응능 원칙에 따라 살펴보면 납득이 된다. 미혼자는 부양할 가족도 없고, 기혼자에 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더 많기 때문에 세금을 부담할 능력이 더 많은 것이다. 누진세도 마찬가지다. 연방정부는 왜 낮은 소득에는 10퍼센트의 세율을 부과하면서 높은 소득에는 37퍼센트의 고세율을 적용하는가? 납세자가 받는 이익에 비례해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납세자의 능력에 비례해서 세금을 부과한다는 원칙이 더 설명이 잘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조세의 형평성은 자로 잰 듯한 절대적인 형평성이 아니다. 능력에 비례한 사회적인 합의에 따른 형평성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구성원들의 ‘합의’가 중요하다. 다수가 옳다면 그것이 공정한 것이다. 투표를 하는 이유다.(847-364-9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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