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소리없는 도둑(Inflation)

2000

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

 

50에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자식들 집을 옮겨다니며 손자들을 돌보다가 80이 넘어 돌아가신 할머니가 있었다. 1970년에 이 할머니의 남편이 남기고 돌아가신 돈은 한국돈으로 100만원이 조금 넘었다. 당시에 서울 변두리 지역에 허름한 무허가 판자집이 20만원이었다. 당시에 50만원이면 2층짜리 양옥집도 살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집을 사지 않고 은행에 돈을 넣어놓고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빼서 생활하기로 결정을 했다. 자식들과 같이 사니까 생활비는 많이 안들었다. 게다가 자식들이 가끔 용돈을 주니 생활하시는 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1990년대에 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자식들이 은행에서 찾은 돈은 백삼십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었다. 1990년대에 그 돈이면 손주녀석들 대학교 한학기 등록금으로 쓰면 끝나는 돈이다. 하지만 집값을 포함한 세상의 물가는 많게는 천배 이상 올랐다. 할머니가 2층짜리 집을 한채 사두었다면 최소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인플레이션(Inflation)이다. 인플레이션을 우리말로는 물가상승이라고 한다. 인플레이션이란 말은 돈의 양이 증가해서 물건의 값이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들어 세상에 오직 한개의 상품과 한개의 돈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이런 상태에서는 돈 한개가 상품 한개와 대응이 된다. 돈 한개로 상품 한개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갑자기 돈 한개가 더 늘어 난다면 이제는 돈 두개와 상품 한개가 대응이 된다. 예전에는 돈 한개로 살수 있던 것이 이제는 돈 두개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이다. 우리는 보통 인플레이션때문에 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인플레이션은 왜 우리를 살기 힘들게 만들고 정부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 늘 힘겹게 노력을 하는 것일까?

인플레이션은 가난한 사람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부자의 주머니로 옮겨 놓는다. 인플레이션은 노동자의 급여 통장에서 사업가의 통장으로 돈을 옮겨 놓는다. 또한 현금저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서 빚이 많은 사업가에게로 돈을 옮겨준다. 부동산이 없는 사람에게서 부동산이 있는 사람에게로 돈을 옮겨 놓는 역할도 한다. 물가 수준이 계속해서 올라가면 노동자의 급여도 상승하게 되지만 보통 급여가 올라 가는 것보다 다른 물가가 더 많이 오르게 되어있다. 물가라는 것이 물건의 가격이라는 말인데 물건의 가격이 올라 가면 누가 이익일까? 가격상승을 통한 이익은 기업가에게 그 몫이 대부분 돌아간다. 그리고 상품가격이 올라간다는 말은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과거에 저축한 돈은 현재에 별가치가 없게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저축을 하지 않을 것이다. 현금을 가지고있는 것이 물건이나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불리하기때문이다. 동시에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과거에 빌린 돈이 현재시점에서는 별로 큰 부담이 안되기 때문에 부채를 많이 갖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또한 상품이나 부동산등 물건의 가치가 올라서 기존에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던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그것들을 새로 사고자 한다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 불공평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중에 풀린 돈을 은행이 흡수해서 돈의 양을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금융당국은 금리를 높인다. 금리가 높아지면 돈 가진 사람들은 이자를 받으려고 은행에 돈을 맡긴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비싼 금리때문에 돈을 잘 안 빌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시중에 돈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왜 일어날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대표적인 이유는 정부가 돈을 많이 찍어 내기때문에 생긴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들이 국가가 돈을 관리하는 관리통화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돈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돈을 찍어내는 일이 가능하다. 그래서 요즘은 돈을 찍어내는 중앙은행을 행정부와 독립을시켜 돈의 양을 관리한다. 또한 제품의 생산비용이 상승하면 제품가격이 올라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생산비용이 올라가는 이유에는 임금 인상이나, 재료나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할머니는 내 외할머니셨다. 외할머니께서는 평생 용돈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시고 인플레이션이라는 소리없는 도둑에게 물가 상승분만큼 돈을 뺏기셨다.<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시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