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슬프지 않으려면 1억을 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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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 대표/시카고>

 

서울 변두리 가난한 산동네에 이제 막 추운 겨울이 시작될 무렵의 일이다. 벌써 40년도 훨씬 전이다. 어머니는 막 배달되어 벽에 쌓아올려 진 연탄 백장과 쌀 한가마니를 바라보며 흐뭇해 하셨다.  땔감과 식량, 이게 월동준비의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가 세살때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셨다. 그때 어머니는 마흔도 안된 나이였다. 그 뒤로 어머니 혼자 가장 노릇을 하셨다. 삼십대 후반에 혼자되어 이십년간 자식 다섯을 키우신 것이다. 그때 어머니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집을 나간 네 아비가 돌아 오지 않아도 좋으니 창문으로 돈다발이나 한 백만원어치를 던져 놓고 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매정한 아버지는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때 행복은 단순했다. 백만원만 있으면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릴 수있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행복해지려면, 아니 불행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다. 얼마나 있어야 할까? 프린스턴대학의 2010년 연구에 따르면, 가구당 연소득 7만 5천불이 그 기준이란다. 물가를 적용하면 오늘날 기준으로 8만 5천불 정도 되고 환율을 적용하면 한국돈으로 1억원쯤 된다. 그렇다면 이 금액은 어떻게 계산된 것일까? 행복의 기준선인 연봉 7만5천불은 2015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과,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행동경제학의 선구자 대니얼 카네만이 함께 2008년부터 2010년까지 45만명의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 학자는 45만명의 미국인들에게 그들의 연소득과 행복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들을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연구한 두 경제학자는 수입이 낮은 사람들이 그 이유때문에 특별히 더 슬퍼하지는 않지만, 수입이 낮은 사람들은 이미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불행을 더 슬프게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들이 발견한 내용중에는 이런것들이 있다. 이혼한 사람들 중에 월소득 천불이하인 사람들의 51%가 전날 슬픔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혼한 사람들 중에 월소득이 3천불을 넘는 사람들 중에는 오직 24%만이 전날 슬픔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똑같이 이혼한 사람이라도 소득에 따라 전날 슬픔을 느낀 사람의 숫자가 두배이상 차이가 났던 것이다. 또한 만성적인 천식이 있는 사람들 중에 저소득자는 41%가 불행하다고 대답한 반면에, 똑같은 만성천식자들 중에서 고소득자인 사람들은 오직 22%만이 불행하다고 대답을 했다. 역시 거의 두배 차이다.

그런데 이혼을 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일단 연봉이 7만 5천불이 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특별히 소득이 변해도 슬픔을 느끼는 정도에는 차이가 없더라는 것이다. 역시 만성천식을 가진 사람들도 일단 연봉이 7만 5천불이 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소득이 더 늘어난다고 해서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위의 연구 결과는 돈이 많아진다고 무조건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인 이스털린이라는 사람도 1974년도에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 알려진 이론을 발표한다. 그가 발견한 사실은 이런 것이었다. 한 나라 안에서는 수입이 더 많은 사람이 수입이 적은 사람보다 더 행복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40년대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소득이 늘어나면서 행복도 역시 증가했다. 하지만 개인 소득이 급속도로 늘어난 1970년대까지는 다시 행복도가 감소했다. 이스털린은 1972년부터 1991년까지 추가 조사를 했는데 이 시기는 인플레이션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개인 소득이 이전에 비해 33%나 늘어났다. 하지만 이시기에 미국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감소했다고한다.

2015년에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럼비아대학과 미국의 미시간주립대학의 공동 연구팀이 1만 2,000여명의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돈과 행복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인 적이 있었다. 이 연구팀은, “돈이 행복을 줄 수는 없지만 슬픔을 덜어줄 수는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를 주도한 심리학자 쿠스레브는 “돈은 ‘행복’보다는 ‘슬픔’이라는 감정과 더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긴 방황을 마치고 이제는 집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신다. 정신을 차리신 것인지 발정이 끝난 것인지는 알길이 없다. 백만원을 그렇게 소원하시던 어머니께 필자가 한달에 백오십만원씩 보내드린 것이 이제 십년쯤 된 것같다. 비록 지금은 최저생계비밖에는 안되는 돈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