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인생은 늘 공사중

1971

손헌수<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65세에 당당히 은퇴를 했습니다. 하지만 30년 후, 95살 생일에 많은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호서대학교의 설립자이자 명예총장이었던 고 강석규 박사가 쓴 글이다. 글의 제목은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다. 그는 이 수기를 쓰던 해에 95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외국어 공부를 시작한다. 그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105세가 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기위해서’였다. 그는 103세의 나이를 일기로 2015년에 작고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에 처음 공부하러 왔을때 들었던 느낌이다. 당시 내인생은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교차로에 들어서 있는 중’같았다. 가정은 꾸렸으나, 수입이 없어졌다.  낯선 타국에서 다시 학생이 되니 불안하고 답답했다. 불안전하고 위험한 상황이라고 느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을 준비하는 지금 그런 느낌일게다. 학교를 마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직장을 가지면 넓직한 직선 차로에 들어서게 된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경제적으로 어느정도 안정이 되면 슬그머니 은퇴 생각이 든다. 때로는 강제로 은퇴를 당하기도 한다. 요즘 미국에서는 130세까지 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는 백세 시대를 지나 130세까지 살 수도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게 될 때,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지를 미리 생각해 놓지 않으면, 허송세월을 보내고 강박사처럼 후회의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지금도 여전히 좌회전을 하고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 인생이 불안하다고,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은퇴후를 준비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은퇴(隱退)는 ‘숨는다’는 뜻을 가진 ‘은’과, ‘물러난다’는 뜻을 가진’퇴’가 만난 말이다. 하던일이나 책임에서 물러나서, 숨는다는 뜻을 가진다. 하지만 숨는다는 뜻의 ‘은(隱)’이라는 한자는 ‘근심한다’는 뜻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현직에서 물러나서 근심하는 삶을 살지 않으려면, 지금 은퇴후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후배 하나가 몇년전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고국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후배다. 자신은 은퇴를 하면 세가지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것이다. 우선 자신은 지금 하는 ‘남을 가르치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퇴를 해도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을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두번째는 ‘운동’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운동을 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재미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각종 모임에 늘 적극적인 그 후배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조직하고, 운용하는 일’을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이 후배의 말에 어쩌면 후회하지 않는 은퇴후 삶에 대한 정답이 있는 지도 모른다. 자신이 하던 일과 관련해서 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은퇴후에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은퇴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사람사이의 관계 속에서만 행복을 느낀다. 그러므로 은퇴후에 인간관계를 더 중요하게 관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무언가 허전하다. 경제적으로 이미 성공한 후배는 돈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은퇴후에 돈이 없다면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다.

뉴욕에 30년 살고있는 뉴요커 한분이 뉴욕의 특징을 이렇게 말한다. 뉴욕은 늘 ‘공사중’이라고 말이다. 어디 뉴욕만 그럴까? 도시는 늘 어딘가 공사중이다. 도시뿐만 아니라 대학에 가봐도 늘 공사중이다. 그런데 공사중이라는 말은 현재의 상태가 완전하지 않다는 말이다. 동시에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변하고 있다는 말이다. 아니 앞으로의 변화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도 늘 공사중이다. 은퇴를 앞둔 사람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기에 대비해 다시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