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 읽기] 고통이 사치가 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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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 대표/시카고>

 

영어회화를 배우겠다고 서울에서 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학원 강사는 ‘마이클’이라는 백인 남자였다. 그는 인디애나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다가 한국에 온 대학생이었다. 그 친구 덕분에 인디애나주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 훗날 나도 인디애나 주에서 공부를 했고, 지금은 인디애나주 근처의 시카고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서울에 있을 때 그 친구가 하루는 나에게 주말에 뭘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주말에 아내와 청계산에 다녀 왔다. 그래서 ‘I climbed a mountain.’ 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마이클은 그렇게 작은 산에 오르는 것은 ‘Hiking’ 이라고 한다고 알려줬다. ‘Climb’은 히말라야 원정대가 험악한 산에 등반하는 경우에나 사용하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고국에 가보면 마치 히말라야에 오를 것처럼 장비와 옷을 갖춰 입고 뒷동산에 ‘Hiking’을 하는 분들이 참 많다. 어차피 열심히 올라가봐야 다시 내려올텐데 등산은 왜 하는 것일까? 등산을 왜 하는지 얼마나 그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으면 누군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을까? ‘산이 거기 있으니 오른다’고 말이다. 예전에야 먹고 살기 위해서 산에 나물도 캐고 약초도 구하고 땔감도 구하기 위해서 산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건강을 위해서 시간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산에 오른다. 등산처럼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고통스럽게 했던 일들을 지금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들이 꽤 있다.

 

실내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기구 중에 트레드 밀이라는 것이있다. 한국에서는 러닝머신이라고 불리는 이 기계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유산소 운동 기구다. 요즘은 조금 여유있는 사람들은 집에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나마 등산은 산에 오르고 내려 오는 길에 자연의 경치라도 구경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기구는 경치는 커녕 제자리에서 계속 움직여야만 한다. 기가 막히는 것은 이 기구가 맨처음 고안된 영국에서 이 기구를 만든 이유는 감옥의 죄수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였다고 전해 진다. 당시에 죄수들은 계단처럼 생긴 이 기구에 올라가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계속해서 발을 굴렸다. 그런데 죄수들은 이 기계 위에 올라가기를 끔찍히 싫어 했다고 한다. 너무 심심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처음에는 죄수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던 이 기계가 요즘에는 부자들이 살을 빼기 위해 돈을 주고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이 사치가 된 경우다.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던 시절이 있었단다. 이밥은 쌀밥이다. 예전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잡곡밥을 먹었다. 부자들은 이밥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돈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잡곡밥을 먹는다. 건강을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다. 마트에 가면 흰색 쌀로 된 즉석 밥보다 잡곡을 조금 섞은 즉석밥의 가격이 두세배나 더 비싸다. 이제 이밥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밥이 된 것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던가. 고국에서 ‘열정페이’라는 말이 유행인 듯하다. 취직이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원하는 경력을 쌓도록 해주겠답시고 저임금이나 무보수로 일을 시키는 것을 ‘열정페이’라고 부른단다. 젊은이가 원하는 경험을 쌓게 해줬으니 스스로의 열정이 페이한 셈을 치라고 해서 이런 말이 생겨났나 보다. 그런데 ‘열정페이’는 착취의 다른 말이다. 일을 시켰으면 돈을 줘야 한다. 어떤 개그맨의 말처럼 고용주들은 ‘젊음’은 돈을 주고 살수 없다고 생각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런 세태에 어떤 학자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면서 젊은이들을 위로한다. 앞서서 인용했던 저 개그맨은 이 학자에게 또 이런 말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면  환자다.’

 

젊은이들이 많이 아픈 시대다. 경제 성장률은 낮아져서 기업은 신입사원을 많이 뽑지 않는다. 등산과 트레드밀을 열심히 하는 기성세대는 수명이 길어져 웬만해서는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놓지 않는다. 젊은이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지금은 비록 궂은 일이고 험한 일이라도 그 일이 미래에는 부자들이 여유롭게 즐기면서 하는 취미 생활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젊은이들이 지금 하고있는 고생이 모두 훗날 아름다운 사치로 기억할 수있는 미래가 오게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