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 읽기] 민주주의와 굶어죽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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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 Taxon 대표/시카고>

고등학교 때 화학을 가르쳤던 선생님이 한분 계셨다. 그 분이 수업 시간에 가장 즐겨하던 말씀은 “지독해” 라는 말이었다. 수업시간에 그 분은 어떤 개념을 먼저 설명하시고는 그 다음에 학생들에게 묻는다. “중학교 때, 이런 내용 배운 사실이 기억들 나?” 그때마다 학생들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안 배웠어요.” 이런 상황이면 늘 그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정말 지독해” 그분이 당시의 대한민국 교육 제도가 지독하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학생들의 기억력이 지독히 나쁘다고 여기셨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아마도 둘 다에 불만을 가지고 계셨던 것같다. 그분은 가끔 학생들에게 손을 들어 선택을 해보라고도 하셨다. “자 어떤 게 맞는 것 같은지 한번 손을 들어봐” 그런데 그분이 고르라고 내놓은 답 중에 더 많은 학생들이 선택한 것은 대부분 틀린 답이었다. 그럴 때면 항상 그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야.” 그때 필자는 막연히 이런 생각을 했다. “지식은 다수결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수결이 더 지혜롭다.” 또한 “비록 다수결이 더 지혜롭지는 않더라도 만일에 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한다면,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그분께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직접 해 본 적은 없다.

 

다수결로 대표되는 민주주의는 옳지도 않고, 불편하면서 거추장스럽기만 할까? 아프리카에는 ‘에티오피아’와 ‘보츠와나’라는 나라가 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이 두 나라를 비롯해서 아프리카 전역에서는 기록적인 가뭄과 대기근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두 나라의 정부가 당시에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지, 두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각각 어떤 정책을 취했는지에 따라 이 두 나라에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당시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정치 지도자가 군부독재를 하던 에티오피아는 GDP의 46%를 군사비용으로 지출하며 기근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구제하는 데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서 에티오피아에서는 무려 100만 명이 굶어죽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하지만,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국가의 정치제도로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이를 실천한 보츠와나는 에티오피아와는 전혀 다른 대처를 한다. 보츠와나에서는 국가전체의 곡물생산량이 평년보다 1/4 가까이나 줄었지만, 굶어죽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발생하지 않았다. 보츠와나 정부는 취약한 계층에게 식량을 무료로 나눠주고 대규모의 일자리를 공급함으로써 기근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해낸다.

 

당시 이 두 나라의 대처를 비교해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의 경제학자가 있다. 그가 바로 ‘아마르티아 센’이다. 그는 인도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다. 그는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에서는 기아가 발생하지 않는다’ 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그는 세계의 빈곤과 기아문제를 민주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밝혀낸 연구로 199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다. 그가 가장 먼저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방글라데시의 기근 문제였다. 1974년도에 방글라데시에는 엄청난 기근이 발생해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하지만 그가 연구를 해보니 1974년에 방글라데시의 1인당 곡물가용량은 다른 어떤 해 보다도 오히려 높았다. 곡물자체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굶어 죽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당시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농민들은 씨앗을 뿌리는 시기에 파종을 해서 품삯을 벌었다. 그런데 마침 1974년에는 파종을 해야 하는 시기에 홍수가 벌어진 것이다. 그러자 가난한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그들은 식량을 살 돈을 구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홍수로 파종이 어렵게 되자, 식량의 공급이 줄어들어 식량의 값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 부자들은 해외에서 식량을 사와서 사재기를 한다. 결국 부자들의 사재기로 식량의 가격이 더욱 오르게 되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식량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급기야 굶어죽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기아를 보고 아마르티아 센이 느낀 점은 분명하다. 기아는 자연재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아는 왜곡된 시장구조와 잘못된 정치제도, 그리고 부자들의 탐욕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선거와 투표를 통해서 정치지도자를 뽑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뽑은 정치 지도자들이 잘못하면 다음번 선거에서 패배를 시키든지 임기 중에 탄핵으로 심판한다. 투표를 하고 민의를 반영하는 과정은 때로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어수선하며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이 투표로 정치지도자들을 벌하지 않고, 정치지도자들도 민의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게 되면 기근과 같은 더 커다란 재앙에 모두가 속수무책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