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 읽기] 비빔면 다섯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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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회계사/변호사/Taxon 대표/시카고>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새로운 것을 얻었을 때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버렸을 때다. ‘이기려면 버려라.’ 어렸을때 읽었던 싸구려 처세술 책의 제목이다. 인간의 손은 오직 두개다. 두 손으로 잡을 수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한줌도 안되는 것을 움켜 쥐고 앉아서 새로운 것을 잡으려 탐내다 보니 우물쭈물 시간만 간다.

제일 먼저 버린 것은 4년 3개월동안 다니던 첫번째 직장이었다. 주위에 모두들 말렸고, 나 자신도 몹시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일만큼 인생에서 잘한 일은 없다. 두번째 버린 것은 미국에서 다니던 두번째 직장이다. 그때는 처음보다 더 불안했다. 타국에서 당장 굶어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만두지 않았으면 평생을 누군가의 노예로 살았을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니, 제일 먼저 버리고자 한다. 필요없는 서류들부터 정리한다. 아니다. 주변이 아니라 머리부터 정리해야 한다. 나의 판단을 흐리게 했던 것들, 쓸데없이 시간만 허비하게 했던 나쁜 습관들부터 버리자.

비빔면 다섯개 때문에 신혼때 아내와 엄청나게 다툰 적이 있다. 아내는 유효기간이 일주일정도 지난 비빔면 다섯개짜리 한팩을 내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는 유효기간이 일주일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멀쩡한 비빔면을 그것도 다섯개씩이나 한꺼번에 버리는 것을 보고 분노하고 말았다. 라면이 요즘은 네개씩 한팩으로 나오지만 당시에는 다섯개가 한묶음이었다. 그래봐야 당시 가격으로 천원도 안되는 것이었다. 지금 가격으로 환산 해도 5천원도 안된다. 하지만, 당시 신입사원이라 수입도 얼마 안되는데, 식량을 버리는 아내에게 섭섭했던 모양이다. 요즘 와서 생각해 보면 비루한 행동이다. 상한 음식을 먹으면 병원비가 더 들 수도 있었다.  게다가 소중한 가족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은 유효기간 지난 음식을 버리는일보다 두고두고 더 많이 후회할 행동이었다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거리에서 남들이 버린 잡동사니를 주워다가 집에 쌓아 놓는다. 언젠가는 꼭필요한 물건들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누군가 와서 치우려고 덤벼들면 절대로 뺏기지 않으려고 싸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똑같은 것을 얻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똑같은 것을 잃을 때 느끼는 슬픔을 더 크게 느낀다고 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손실 기피’라고 부른다.

미국의 어떤 대학에서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의 학생들에겐 그 대학의 마크가 찍힌 머그잔을 나눠준다. 그리고 나머지 그룹의 학생들에겐 머그잔을 나누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 머그잔을 받은 학생들과 머그잔을 가지지 않은 학생들을 한사람씩 쌍을 짓는다. 머그잔을 받은 학생들에겐 그 머그잔을 얼마에 팔겠느냐고 물어 본다. 머그잔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머그잔을 가진 학생들로부터 머그잔을 얼마에 사겠느냐고 물어본다. 그 결과 머그잔을 팔려고 하는 학생들이 받고자 하는 평균가격이 머그잔을 사겠다는 학생들이 부른 평균값의 두배가 나왔단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으면 내놓고 싶어하지 않고, 가진 것을 잃을 때 더 큰 상실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같은 대학에서는 이런 실험도 한다.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쵸코바를 나누어 주고, 다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똑같은 가격의 머그잔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 두개의 가격이 같다고 알려준다. 이제 두 그룹의 학생들에게 쵸콜렛바와 머그잔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실제로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은 열명 중에 한명 밖에 없었단다. 귀찮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잃지 않고 싶어하는 심정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지금 다니는 직장이 아니면 굶어죽을 것 같을 때가 그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때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현재 직장에 대해서 절박하게 느끼는 사람은 창의적일 수가 없고 상사에게 ‘No’라고 말할 수 없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고 결국은 직장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부속품같은 존재가 되기 때문이란다. 연인도 마찬가지다. 지금 누군가의 노예가 되어 그 사람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면 지금이 바로 그 사람 곁을 떠나야  할때다. 이 관계는 더 이상 연인관계가 아니라 이미 노예관계이기 때문이다. 물건은 말해 무엇하랴. 살면서 모든 것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우리 곁을 지나가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그저 만나고 느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