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 읽기]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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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 Taxon 대표/시카고>

 

한때 ‘머쉬멜로 이야기’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었다. 밀폐된 공간에 아이들을 한명씩 넣어두고 머쉬멜로를 하나씩 준다. 아이들은 지금 바로 하나를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주어진 머쉬멜로를 먹지 않고 15분 동안만 참고 견디면 아이들은 머쉬멜로를 하나 더 얻을 수있다. 이때 머쉬멜로 하나를 받자마자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은 아이들보다 15분동안 참고 견디어 머쉬멜로 한개를 더 얻은 아이들이 훗날 인생에서 더 크게 성공했다는 어떤 대학교수의 실험 이야기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계속해서 선택을 한다. 그런데 그 선택은 시간과 연관이 있다. 지금 어떤 것을 선택함으로써 나중에 다른 것을 포기하거나, 지금 어떤 것을 포기함으로써 나중에 다른 어떤 것을 얻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여학생과 데이트를 하고 시험공부를 포기할 수도있다. 하지만 당장 시험공부를 하기로 선택한 경우에 아름다운 여학생을 평생 놓칠 수도있다. 지금 당장은 눈앞에 놓인 시험이 최선의 결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시험을 포기하고 선택한 여인이 미래의 배우자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해주고 삶을 윤택하게 해줄 수 있다면, 눈앞의 시험보다 그녀를 선택하는 것이 결국에는 더욱 현명한 결정일 수도 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 그녀를 선택한 것 때문에 시험도 망치고 결국 그녀는 미래에 자신을 패가망신시키는 끔찍한 여자가 될 수도 있다.

어떤 한 시점에서는 최선으로 보였던 행동이나 선택이 다른 시점에서는 최선이 아닌 현상을 경제학에서 ‘선호역전(Preference Reversals)’ 또는 ‘시간적 비일관성(Time Inconsistency)’이라고 부른다. 정부의 경제 정책에 있어서 이런 선호역전이나 시간적 비일관성이 나타날 때가 자주 있다. 예를 들어 당장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 정부가 돈을 푸는 정책은 지금으로서는 최선인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중에 돈이 늘어나면 물가상승을 일으키고, 이는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는 실업률을 낮추는 효과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라는 영화가 있다.  영국의 파월 대령은 미국계 테러리스트를 6년째 쫓고 있다. 파월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이 테러리스트를 찾아낸다. 그런데 이 테러리스트는 자살폭탄테러를 계획하고 있다. 파월 대령은 그를 사살하기로 하고 영국정부에 폭격 허가를 요청한다. 영국정부는 결정을 미루고 미국의 의견을 묻는다.  미 국무장관은 네바다 공군기지에 있는 드론 조종사들에게 테러리스트에 대한 폭격을 명령한다. 하지만 폭격대상인 테러리스트가 머물고 있는 저택 앞에는 무고한 한 소녀가 있었다. 이 소녀 때문에 드론 조종사들은 폭격을 주저한다.

자살폭탄 테러가 한번 일어나면 평균 80명의 민간인이 죽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 테러리스트의 집을 폭격 하면 테러리스트를 제외하고 단 한명의 무고한 소녀만 죽으면 된다. 하지만 지금 그 소녀 한명을 살리기 위해 폭격을 하지 않으면, 저 테러리스트가 자살폭탄테러를 일으켜 미래에 다른 무고한 80명의 희생자가 생길 수도있는 것이다. 단순한 계산에 의하면 지금 당장 저 테러리스트가 머물고 있는 집을 터뜨리는 것이 맞다. 하지만 드론 조종사들은 왜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것일까?

무고한 소녀 한사람이 죽는 것은 당장 벌어지는 일이지만 80명이 죽는 것은 한참 뒤의 얘기다. 또한 한사람이 죽는 것은 확실한 일이지만, 80명이 죽는 일은 아직은 불확실한 일이다. 이렇게 시간적으로 먼 일인가 당장 벌어질 일인가에 따라서 사람들의 선호는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선호역전’ 또는 ‘시간적 비일관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선택이 어려운 것은 단지 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명분이라는 것도 선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테러리스트들이 80명을 죽이면 우리는 선전전에서 이기지만, 우리가 한 소녀를 죽이면 그들이 이긴다”는 영화 속 대사는 명분이라는 것이 어떻게 전쟁 중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한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선호역전은 단순히 심리 때문이 아니라 뇌반응의 결과’라고 말한다. 눈앞의 작은 이익과 먼 미래의 큰 이익을 선택할 때, 사람들의 뇌를 조사해 보니 활성화되는 뇌의 부분이 달랐다는 것이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생각할 때는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이, 먼 미래의 큰 이익을 중시할 때는 ‘인지’를 조절하는 뇌의 부분이 활성화됐다고 한다. 결론은 하나다. 선택은 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