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가식과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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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은 자기가 살아 온 과거를 증명할  만한 방법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증명이 될만한 자료가 없으면, 자기의 존재를 온전히 들어 낼 방법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가장 근접하게 표현하는 것이 왕년에 나는 이랬다라고들 한다.  여기서 부터  가식(假飾) 이란 단어가 탄생을 한다.    가식적인 사람은 자기 자랑하기를 좋아 한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할 자료가 거의 없는 것들을 이야기 한다. 가식이 넘쳐나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않는게 좋다.  가식적인 사람은 항상 자기 중심적이고,  매사에 부정적인 자기 주장을 펼친다.  가식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정서적 및 정신적 건강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여서 종교 쪽으로 침투하는 경우가 많다. 가짜 목사라던가, 가짜 종교 종사자들이 이에 속한다.  타인의  관심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식적인 사람이 많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타인의 잘못함에 대한 지적은 잘 하지만, 칭찬은 거의 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 한다 해도 겉치레적인  칭찬을 잘 한다.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자아감을 강화 하려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방편으로 사람들과 친분을 맺으려 한다.  이런 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부성 칭찬을 과하게 함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 속담에  “ 간에 붙었다가 염통에 붙는다. “  라는 말이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신념이란게 없다.  가식적이고 기회주의자이기에 금방 친구인 척 하다가 자기에게 이익이 될만한게 없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떠남을 보게 될 것이다.

     가식적인 사람과 비슷한 것 중에 위선자 (僞善者) 라는게 있다.  위선자는 착하지 않으면서 착한 척 하는 사람이라 칭하고 싶다.  미국 사람들은 가식은 개인의 성격에서 오는 거라 생각을 하는 듯 하다. 그러나 위선자는 Hypocrite 라 하여 상당히들 싫어 하는걸로 알고 있다.  또하나 우리가 알고 있는 위정자란 단어가 있다. 위선자와 위정자는 뭔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위정자 (爲政者) 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위정자 중에 위선자가 너무나 많다는 거다.

   한 가정에는 가장(家長)이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을 하며 보호한다.  위정자들이 국민을 위해서 헌신적인 봉사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일신상의 영화를 누릴 것만 생각을 한다.  한 나라를 책임 진 사람들이 그만 두게 되면 나라의 빚(Debt)은 엄청 늘어나 있다.  심하게 표현을 하면 모두가 도둑놈들 같다.  도둑들을 지키는게 국민들인데, 국민들이 아직은 덜 현명해서인지, 도둑을 잘 구별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다산 정약용 (丁若鏞 )이 쓴 목민심서에 보면,  “ …. . 오늘날의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  다스린다는 자들이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  1800년 초에 밝힌 내용이 오늘을 사는 위정자에게 딱 맞는 이야기 같다.  수 많은 위정자들에게 묻고 싶다.   각자 자기의 삶에 솔직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