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의미(하나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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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목사)

 

구원은 죄와 죄의 심판으로부터의 자유이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율법을 지키는 삶 자체가 구원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삶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구원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영광 돌린다”는 말은 히브리어 동사 “카바다”에서 나왔는데, 이 동사의 가장 기본적인 뜻은 “무겁다”이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의미가 파생하는데, 이를테면, “명예, 권위, 위엄”이란 뜻이 나온다. 분명 이것들과 무거운 것은 깊은 관계가 있다. 더 나아가 이 말은 이런 형이상학적인 뜻뿐만 아니라 형이하학적 의미로 확대된다. 바로 영화로운 빛을 의미하는 “영광”(glory)이다. 이 표현은 구약성경 여러 곳에 나타난다.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 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출 16:7).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출 16:10). 이렇게 “영광”(카보드, 카바다의 명사 형태)은 관념적 의미뿐만 아니라, 형이하학적 의미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눈으로 보았던 영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출애굽기 24:16-18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출 24:16-18).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의 눈에 찬란한 빛으로 보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영으로서 그 본질에 있어서 불가시적이다. 영이신 하나님을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로 비유할 때에 가장 적절한 것은 아마도 빛일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가 영광으로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내지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 빛과 거울의 관계가 가장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지은 모든 피조물은 일종의 거울과 같다. 거울의 역할은 실체를 반사하는 것이다. 좋은 거울은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반사한다. 나쁜 거울은 왜곡되게 반사한다. 거울이 깨지거나 더럽혀져 있으면 실체를 제대로 반사하지 못한다. 이처럼 하나님이 지은 모든 피조물은(해, 달, 별, 나무, 꽃, 동물, 양심, 역사)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반사하고, 하나님의 뜻을 반사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반사한다. 예를 들어, 하늘은 하나님의 무한한 위엄과 권위를 반사한다.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의 사랑, 공의, 자비, 긍휼을 반사한다. 피조물의 일부인 인간도 하나님을 반사한다. 인간의 삶과 생각과 행위와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 성품을 반사할 때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더욱 쉬운 말로 해서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 때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즉 순종이 곧 영광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중생 되지 않는 모든 인간은 더러운 거울과 같다. 거울에 때가 묻어 있거나 깨져있다면 사물을 제대로 반사하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중생 되지 않는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없다. 성령으로 중생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어, 성화를 걸쳐서 영화의 단계에 이른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 구원이란 바로 이것이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게 창조되었지만, 타락으로 인해서 더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구원받은 인간은 이를 수행할 수 있다. 전인격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