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의미(하나님 형상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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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목사)

 

앞에서 구원이란 죄와 죄의 심판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죄가 없는 삶, 즉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 즉 율법을 지키는 삶 자체가 구원이라고 했다.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서가 아닌 하나님 은혜에 의한 선택과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선한 삶 자체가 구원이요 구원의 결과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선한 삶의 부재는 은혜와 선택과 중생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이제, 구원을, 죄로부터의 자유라는 주제와 연관하여,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죄로부터의 자유는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수많은 피조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형상이란 일종의 거울과도 유사하다. 거울은 어떤 실체를 비춘다. 그러나 거울 속에 있는 것이 실체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하나님의 본성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하나님의 본성이 사람의 전 인격 속에 스며들어 있다. 여기에서 인격이란 지, 정, 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포함한다. 사람은 영과 육이 같이 있을 때 온전하다. 영과 육은 상호 작용하며 존재한다. 그러므로 영혼만이 하나님의 형상과 관계되고 육은 관계없다고 이원화할 것이 아니라, 지, 정, 의, 육, 영혼, 전 인격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해야 적절하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닮은 점이 있다. 이것을 공유적 속성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지혜롭고, 능력이 많으며, 거룩하고, 정의로우며, 선하고, 진실하시다. 이런 속성이 인간에게서도 발견된다. 물론 그 질적인 면에서 본다면,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하지만,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전능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하나님의 속성을 전인격을 통해 인간으로서 완전하게 반영하도록 창조되었다. 지적인 면에서 인간은 사람으로서–하나님만큼이 아닌– 완전한 지혜와 지식과 이해와 논리를 가진다. 정적인 면에서 인간에게는 자비와 사랑이 있다. 악에 대해 분노한다. 의지적인 면에서 사람은 선한 삶을 산다. 육체적인 면에 있어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고, 죽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영원성을 반사한다. 이렇게 인간은 사람으로서 완전하게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게 창조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이후,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마귀의 종이 된 이후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심하게 훼손되었다. 지, 정, 의, 육, 전 인격체가 다 훼손되었다. 지적인 면에서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에 대해서 올바로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선언한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주셔서 택한 자를 위한 희생의 제물이 되셨지만, 인간은 성자를 거절한다. 감정적인 면에서 사람은 이기적이다. 죄를 즐거워한다. 오염된 쾌락을 좋아한다. 의지적인 면에서 사람은 선한 삶을 살지 못한다. 육의 면에서 사람은 병들고, 늙고, 죽는다. 이런 현상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했기에 나타난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었지 전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고 했다(롬 1:19). 아직 형상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롬 1:20). 즉,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었다.

구원이란 이렇게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지식, 감정, 의지, 육체, 영혼 모든 면에서 원래 하나님이 창조했던 그 완벽한 인격체로 돌아가는 것이다. 완전한 영혼, 완전한 육체로 하나님의 성품을 삶을 통하여 반사하는 것이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