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박진영씨의 “겨자씨만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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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교우들에게 구원론을 가르치다가 박진영 씨(이하 P 씨)가 쓴 “겨자씨만 한 믿음”을 발견했다. P 씨의 “겨자씨만 한 믿음”(http://www.twitlonger.com/show/n_1sqh5i4)은 그가 구원파 신도냐 아니냐는 논란 속에서 자신의 견해를 해명한 일종의 간증문이다. 그는 이 글에서 2017년 4월 27일 밤 10시에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바로 그때 구원의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P 씨는 구원받은 참 신자인가? 필자는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P씨가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그 시간에 구원받았나? 그것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문제는 구원에 대한 그의 해석이다. 비록 P 씨의 믿음이 참된 것일 수는 있어도, 그 해석은 개혁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올바르지 않다. P 씨가 내린 해석의 문제점은 “구원”과 “구원의 확신”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며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구원이란 하나님이 죄인을 죄와 죄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신 일을 가리키며 구원의 확신은 자신이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을 느끼는 것이다. 구원이 절대적이라면 구원의 확신은 상대적이다. 구원과 구원의 확신과의 관계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구원은 구원의 확신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구원을 받으면 구원의 확신이 생길 수 있다. 구원이 먼저이고 구원의 확신이 다음이다. 구원과 구원의 확신은 두 가지 다른 본질이다.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괴롭기에 신자는 구원의 확신을 추구해야 한다.
  2. 구원의 확신은 신앙의 본질이 아니다. 구원의 확신을 100% 갖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이 구원을 보증하지 않는다. 즉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해서 정말로 구원받았다는 보장이 없으며,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한 것도 아니다. 참 신자나 거짓 신자나 모두 구원의 확신이 있을 수 있고, 동시에 없는 수도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8장 3항 참조)
  3. 구원의 확신은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된다기보다는 있다면 얼마큼 있느냐는 퍼센트의 문제가 남아 있다. 구원의 확신이 많이 있는 사람이 있고 적게 있는 사람도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8장 4항)
  4. 구원의 확신은 증가하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하며 때로는 없어지기도 한다. 구원의 확신이 감소하는 원인으로는 죄, 질병, 또는 하나님의 어떤 특별한 뜻이 있을 경우이다. 다윗의 경우를 보면, 그가 밧세바와 간음했을 때 구원의 확신이 사라졌다. 그 괴로움을 고백한 시가 시편 51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8장 4항)
  5. 구원의 확신이 사라졌다고 해서 구원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가 구원받았는지 절대적으로 아시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인간은 하나님이 결정한 것을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서 알아맞힐 뿐이다. 그래서 구원의 확실성(Certainty of salvation)이 있고 구원의 확신(assurance of salvation)이 있다. 이 두 개는 서로 구분된다. 구원의 확실성은 하나님 편에서 바라본 것이고 구원의 확신은 인간 편에서 바라본 것이다.
  6. 자기 구원을 확신하는 증거는 세 가지다. 나는 이것을 삼성(三聖)이라고 부른다. 성경(聖經), 성령(聖靈), 성화(聖化)다. 성경 말씀이 진리로 받아들여 지고, 성경을 통해서 구원에 대한 것을 배우며, 성령께서 마음을 감동케 하고, 자신에게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를 통한 성령의 열매(성화)를 발견할 때 구원을 확신한다. 성화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도 100% 구원의 확신을 갖기도 하지만, 이는 자기최면, 즉 가짜일 확률이 높다.
  7. 믿음은 예수가 나를 구원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경을 진리로 인정하고 성경 말씀이 가르쳐준 대로 순종하며 사는 노력을 의미한다. 예수가 나를 구원했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구원의 확신에 대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