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다 먹구 살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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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삼(전 주립병원 정신과의사/시카고)

새벽에 걷는 동네 공원길은 장방형이다. 연못을 건너는 아담한 나무다리도 있고, 풀밭과 잘 손질된 꽃길도 있다. 산책로를 따라 서편 쪽으로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가 내 코 앞으로 지나간다. 18 바퀴 트럭(18 wheeler truck)의 대열은 주위의 기세를 제압하듯 위협적인 굉음을 쏟아내는가 하면, 중형 픽업트럭과 소형 승용차들이 오두방정을 떨며 갈 길을 다툰다.  참으로 시끄럽고 경망스럽다. 아내는 지아비의 밑도 끝도 없이 애매하게 날이 선 불편한 심기를 거들듯, “다 먹구 살려구…” 한마디 한다. 캐나다 기러기떼는 부지런히 잔디풀밭을 파헤친다. 풀뿌리만 뜯어먹고도 탐스러운 몸집을 유지하는 것도 늘 수수꺼끼인데, 들 다람쥐는 딱딱해 보이는 자작나무과의 깨금 열매를 앞발로 움켜쥐고 강동강동 할금할금 무엇이 그리도 끔찍하게 바쁘당가? 제초제 화학약품 스프레이를 뒤집어쓰지 않은 꽃밭은, “야아 이건 횡재야! “꽃을 찾는 온갖 날벌레들이 숫째 시끄럽다. “그래 그래 다 재미있게 먹구 살려구 열심이야!”

은퇴 삼년이된 아내는 지금도 새벽잠 속에서 수술실 꿈을 꾼다고 한다. 닥터 R이 집도하는 슬관절 대치술(total knee replacement). 수술방 간호사, 비오듯 땀을 흘리며 미칠듯이(?) 행복스러웠다 한다. 사라사테의 카르멘 판타지(Carmen Fantasy)를 병적으로 고집하는 닥터 R 보다 어느덧 수술방 스태프 모두의 연가가 되어버린 하바네라, 아라고네이즈. 그 흐름에 담긴 영혼의 울림으로 회한과 참을 수 없는 기쁨으로 공중부양을 경험하는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한 여름철 들농사는 흥겨운 춤사위를 타는 농악으로 흥이 돋는다. ‘이 고랑 저 고랑 논밭 두덩엔 오곡백과 무르익고 에헤야 데헤야 어루아 상사디야’, ‘정자나무 그늘밑에 앉을 자리 정한 후에 점심 그릇 열어 놓고 보리단술 먼저 먹세’, ‘반찬이야 있고없고 주린창자 메운 후에 청풍에 취포하니 잠시간 낙이로다. 농가월령가. 정학유.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놀이와 유희야말로 우리들의 본질을 찾아볼 수 있는 인간관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본디 놀고 즐기기위해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문화현상은 놀이와 유희를 통해서 발전되어 왔다고 믿는다.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문학 등, 인류문명의 산물은 사실상 ‘놀이’와 ‘유희’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놀이와 유희는 노동과 생산, 의식주 같은 현실적 목적 추구를 넘어서는, 본질적인 인간적 즐거움을 찾아나서는 정신적 육체적 활동을 뜻한다 한다.

40,000년 전 까지만 해도 우리와 공존했던 네안데르탈(Neanderthal)인 들은 종종 무지막지,추상적 사유를 할 줄 모르는 흉폭한 반인반수의 괴물로 그려졌었다. 최근 고고인류학자들은 우리들과 거의 비슷하여 때때로 우리와 짝짓기를 자행했을 수도 있었던 네안데르탈인 역시 죽움과 사후세계를 염두에 둔 장례문화 의식을 가졌으리라 믿고있다. 크로마뇽인의 알타미라(Cave of Altamira) 동굴벽화에 버금가는, 스페인 네르하(Nerja) 동굴벽화는 네안데르탈인들의 솜씨로 호모 사피엔스 보다 이만사천년 앞선 시대의 일이라 한다.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Cro-Magnon)인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본질적으로 놀이와 유희를 즐기며 인류문화를 변형시켜 왔을 것이다. 선사시대의 동굴 동물벽화는 성공적인 수렵행위를 기원하는 종교적 의식과 주술에서 비롯했을 수도 있을 것이나, 필자는 한편 주체할 길이 없어, 용솟음치는 놀이와 유희를 즐기고 싶은 호모 루덴스의 본능적 욕망의 발현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금년 시월 초 삼일 유튜브를 통해서 광화문 광장거리로 모여드는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한다. 편안스러운 옷차림의 애국시민들이겠지! 예쁜 유모차를 끌고나온 젊은 일가족은 군중의 열기로 가득한 거리를 산책하듯 여유있게 걷는다. 실로 인산인해를 이룬 참여 군중의 참 속뜻을 잘 알고 있는 듯, 침착한 구호에 걸맞는 타악기 소리는 진지한 시민들의 가슴에 호응을 부른다.    놀이와 유희의 본성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 ‘다 먹구 살려구’ 각자 옳다고 믿는바 대로 생각과 행동을 펴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카고 한인문화회관에서는 ‘스물두번째 콘서트 인 시카고’가 한창이다. 쇼스타코빗치의 왈츠를 연주한다. 훌륭한 음악은 호모 루덴스의 본성을 심도있게 흔들어 놓는다. 작은 콘서트 홀은 기쁨과 흥분으로 청중을 사로잡는다. 놀이와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난 대로 기쁨을 표현한다. “다 먹구 살려구, 신나게 놀이와 유희를 쫓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