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삶의 결을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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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
시카고 기쁨의 교회

 

어린 시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살았다. 놀이터는 산이었고, 유치원 대신에 산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소나무가 많았다. 그런데 때에 따라 마을 어른들이 산에 올라와 굵은 소나무를 베어가곤 했다. 그때 친구들과 함께 나무를 베는 모습을 지켜 본 후, 남아 있는 나무의 밑둥을 보기 위해 가까이 가면, 은은한 열기를 느꼈다. 나무도 치열한 싸움을 한 것이다. 잘려 나가지 않으려고 보이지 않은 몸부림을 친 것이었고, 그 싸움의 열기가 나무 밑둥 주변에까지 뿜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통을 잘려 보낸 그루터기는 진한 눈물을 흘린다. 그것을 지켜 보면서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저 나무도 살아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훗날 책을 통해, 잘려진 나무 밑둥, 특별히 나무의 심재라고 하는 부분에서 나무의 진물이 올라오는데, 바로 그 진물이 밖의 공기와 접촉되면서 나무의 나이테를 더욱 진하게 만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무의 눈물은 그냥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고통의 눈물이고, 상처의 눈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눈물은 자신은 베어지고 죽어가지만, 자신이 얼마만큼의 삶의 연수를 살았고 어떤 연륜의 인생을 살았는지를 세상에 알려주기 위한 나무의 결(나이테)을 더욱 진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실제로 나무의 나이테는 나무가 죽은 것처럼 지냈던 시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나이테가 진하면 진할수록 더욱 큰 죽음의 고비를 겪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사실은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 인간도 인생의 나이테가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삶의 고난과 고통의 순간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삶의 단면을 자를 수 있다면, 우리도 분명히 눈물을 흘릴 것이고 그 눈물이 진하며 진할수록 삶의 나이테와 인생의 결은 더욱 진한 색깔로 새겨질 것이다. 그러나 진한 나이테를 가진 나무일수록 단단하고 강직한 것처럼, 우리 인간의 삶도 그러지 않겠는가!

진한 삶의 결을 가진 사람들은 단단하고 힘이 있으며 강단이 있다. 그것은 곧 고통과 아픔의 삶을 이겨 냈다는 것이고, 또 다시 그런 순간이 찾아와도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바로 그런 인생의 진한 결이 필요하다.

기독교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인 2017년 3월 1일 수요일부터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기 위한 40일 사순절(Lent)의 경건의 삶의 훈련을 한다. 전통적으로 이 기간 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금식(Fast)을 하거나 다양한 경건의 훈련을 한다. 그 훈련의 삶은 최종적으로는 예수의 죽음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결을 만들어내야 한다. 예수가 골고다를 오르며 흘렸던 눈물을 함께 흘려야 하고, 십자가에서 외쳤던 절규와 외침을 우리의 침묵과 절제 속에서 세상에 울려 퍼지게 해야 한다. 그것들이 세상과 만나 우리 영혼의 나이테를 더욱 진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성경 속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말했다. 사실 우리는 매일같이 죽고 또 죽는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서 죽고, 나서야 할 때 그러지 못해서 죽으며, 자랑하고 인정받아야 할 때 참아야 하고 뒤로 물러서야 할 때가 있어서 우리는 죽는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렇게 죽게 되면, 그것은 우리 인생의 결이 되고 나이테가 되는 것이다.

인도 속담에 “호랑이 줄무늬는 바깥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고 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번 참게 되고 인내하게 된다. 곧 나를 죽이고 다른 사람을 살려 주기도 하며, 죽어야 살릴 수 있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 영혼 안에는 아름다운 줄무늬가 생기는 것이다. 죽는 것은 괴롭고 힘들지만, 그것으로 인생의 가치 있는 결을 만들어 낸다면, 그 죽음은 끝이 아닌 것이다.

삶의 결을 만들어 보자. 그 인생의 결은 결코 편한 길, 넓은 문에 들어가 만들어낼 수 없다. 험한 길, 좁은 문을 가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난과 아픔, 고통과 상처를 이겨내자. 그리하여 죽음의 고비와 순간을 이겨낸 강단진 인생으로 아름다운 결을 품고 사는 모두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