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탄전야(Christmas 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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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12월이 되면서 징글벨 노래가 여기 저기 들린다. 썰매가 눈길을 달리며 선물을 가지고 오는 것을 말한다. 선물은 기쁨을 준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다. 온 세상에 주어지는 기쁨이다. 그 선물은 바로 한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주어지는 새로운 생명이다. 그 선물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기쁨과 새로운 생명을 가진다. 사람은 큰 버선 주머니를 만들어 달고 그 선물 받기를 기다린다.

왜 사람이 그 선물을 기다리나?  그것이 필요하여서다. 예수께서 태어나기 전야 형편이 그러하였다. 그가 2천여년 전 유대 땅에서 태어난 당시 정치는 로마가 장악하고 문화는 헬라가 지배하고 종교는 유대교가 형식에 가득차 있었다. 로마는 팍스 로마나 곧 로마의 평화를 준다는 명목이나 가는 곳마다 정복과 착취, 노역과 과세로 백성은 가난과 억압에 시달렸다. 헬라는 사람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추구하나 각자 자기 좋은 대로 삶을 누렸다. 구분과 차별로 주인과 종,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는 구분되고 차별화 되었다. 원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가 그를 죽이거나 버린다. 여자는 인권이 없는 재산에 불과하다. 결혼과 이혼은 남자가 원하는 대로 된다. 로마와 헬라는 만신이라 할 정도로 많은 신을 만들어 섬겼지만 유대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 계신 것을 말하며 종교 지도자는 엄격한 율법조항과 의식으로 백성을 정죄하고 오만과 시기로 가득 했다. 당시 사회는 소수의 특권자가 모든 것을 누리지만 백성은 자유와 생명을 유린당하였다. 그들은 참 생명과 자유, 기쁨과 평화를 주는 지도자가 와서 세상이 새로워지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게 되었다. 성탄 전야의 모습이다.

기다림이 기다림으로 끝난다면 무슨 희망이 있나? 때가 차자 기다림이 이루어지다. 만민의 소망과 기다림에 응하여 참 기쁨과 생명을 주는 자, 예수가 가장 큰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그는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 포로된 자에게 자유, 맹인에게 시력, 억압 당한 자에게 해방, 상한 자에게 치유를 주셨다. 그를 만난 자는 누구나 삶에 변화가 왔다. 그 때 그가 참 선물인 것이 나타났다. 내가 목회할 때 권사님 한 분은 한국의 언니가 후두암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있었다. 의술로 고칠 길이 없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동안 크리스머스가 다가오자 권사님이 그를 위해 기도 하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왕에게 아들이 태어나면 옥문을 열고 죄수를 해방 시키는 일이 있었는데 왕중의 왕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시는데 내 언니 죽음의 옥문을 열고 그를 해방 시켜 주시지 않겠습니까?” 기도가 응답되어 언니가 깨끗이 낫게 되고 새로운 생명을 살게 되었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

소망이 없어진 어둔 밤 같은 형편에 자유와 생명의 주님이 선물로 주어진다. 버선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열고 그 선물을 받아드리면 그것이 내 것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는 여전이 성탄 전야에 있게 될 것이다. 빛과 기쁨 생명을 누리는 성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