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스스로 찾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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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맑은날 하늘을 쳐다보면 온통 지난 과거가 구름과 같이 조용히 흘러 간다.  때로는 잡고 싶은 것도 있지만, 저게 왜 저기서 나오나 하는 것들도 있다.  버려야 할 것들이 있는데 망각이란 기능이 작동치 않아서 나타났다고 생각도 해 본다.  누구나가 기억이란게 있고, 재미난 추억거리도 있다. 그런데 이걸 누구랑 나누고 싶은데 대상을 찾기가 어렵다.  주변을 둘러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없고 온통 젊은 시니어(Senior) 뿐이다.  맞장구 치며 이야기 하기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제격인데,  특히 할아버지를 찾기가 어렵다.  그 이유가 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남자들에게는 정서적인 공감대가 없어서 대화가 어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 서로가 같은 여행지를 갔다 왔어도 공유능력이 부족하니 말 수가 없는 것 같다.

100세 시대를 맞이 하여,  끄트머리에 바르게 앉아 기다리는 분들이 많은데, 모두들 용감해서 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120세를 바라 보는 분들이 많아젔다. 이런 분들은 앉을 힘이 있다면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 들고 있다. 이유는 누워 있을 사람들이 일어나 앉아 있고, 앉아 있을 사람들이 걷기에 모두가 건강해 보이는지도 모른다. 누군 누워 있고 싶어서 누워 있을까.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끝이 있음을 누구나 다 안다. 그것은 바로 죽음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 자연의 섭리 앞에 불안과 우울을 갖게 되는 거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 보면 많은 분들이 자유롭고 건강하고 편안하게 나이 들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런 분들은 늙어가는 노후를 제대로 알기에 재미나게 살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며 삶의 우선 순위를 바꾸며 살고 있다.  비록 타인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항상 재미를 찾고 있으며, 행복해지려 노력 한다. 노년에 무슨 꿈이 있겠나 마는 건강하게 살려는 지향점(指向點)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서 더욱 더 건강해 지려는 욕구가 남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건강이 주는 재미를 알아야 한다. 재미라는 건 누가 주는게 아니다. 자기 스스로가 찾아서 재미있게 웃으며 살면 된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 봐도 웃을 일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엔 집 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손에 스마트 폰만 있으면 혼자 웃을 일이 지천에 깔려 있다.

“ 하느님과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이 맞나 ?.  아마도 그럴거야.  그라믄 성씨가 같아야지. 하느님은 하씨 성이고, 예수님은 예씨 성인데,?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 즉 부자간이 아닌게 분명하다.  얘는 뭐라카노.  서양사람들은 성이 뒤에 붙는다 아이가. 뒤에 님자가 같으니까 같은 성씨 인기라.  하느님의 님자 성하고 예수님의 님자 성이 같지 않느냐 말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아들, 즉 하느님과 예수님은 부자지간이 맞는기라.”  이러한 유모를 읽으면서 웃음이  안나오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많은 노년들은 어려서 교육을 받을 때 부터 듣고 외워야 하기에  수용적 사고력만 발달이 된거다.  교회에 가면  듣기만 하지 질문이란게 없는 듯 하다.  목사가 설교를 하면 맞던 틀리던  듣기만 하지 틀림이 있어도 의문을 제기하거나 토론이 불가능 하다.  교회에서 설교듣는 것도 수용적인 사고력만이 필요 한 것이다. 창의력 과 비판적 사고력을 발휘 할 기회란 거의 없다.

노년에게는 축적된 경험이 있다.  어려서 배운게 커가면서, 알게되고 이루어진게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 들이 나이들었는데도 유용하게 사용을 하고 있는게 많다.  다른 나라에 와서 많은 걸 이루어 놓은 분들은 정말로 지혜가 있는 분들이다.  이제 그 지혜를 본인의 삶에 주인이 되어 재미를 추구하여 행복해 지면 좋겠다.  늙어서 재미를 배우면 각자의 영혼은 죽어도 썩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재미라는 단어가 나타나면 곧 행복해 질거라 믿는다. 그러니 주변을 둘러 보고 재밋거리를 찾아 봄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