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인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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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틈틈히 세상을 휘 둘러보면,  참으로 희한한 일들이 많다. 그 많은 것들을 하나 하나 보고 듣기란 시간이 모자란다. 각자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만 대충 대충 둘러 보기에도 힘에 부치는 시간을 할애 해야만 한다.  그 만큼 세상은 어수선하고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런 와중에 사람의 속을 들여다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쉬운 방법으로 겉에서 나는 인간적인 냄새 정도만 맡아 보고는 그 사람을 평가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사람은 냄새가 없다. 아주 애매모호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겉은 친절하나 속을 드러내 놓지 않는 음흉한 사람도 있다.  이런 음흉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제일 싫어 한다.  음흉한 사람들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없다. 또한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 드는 사람 일 수록 얼굴 피부 부터 두꺼운듯하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가식적인 친절함은 있으나, 촉촉한 인간미가 없다. 헛소리만 되내이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가식적인 웃음을 웃는 가증스러운 사람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 있다.  종교라는 이름의 모임은 사교장과도 같은 곳이다.  모두가 목표 지향점이 한 곳을 향해 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하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 때 뿐이다. 공간 하나만 옮겨도 서로가 서로를 등한시 하거나 모른체 한다. 이게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여 주는 추태이다.  부와 권력을 쥐어 볼가 하고 정치적인 구호도 마다하지 않는 종교 지도자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은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자기 자신하나 바르게 세우지 못하면서 세상과 중생들을 구하겠다는 위선자들이 수두룩하게 많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즉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인품이 없다는 것이다. 인품과 인격에 대한 향이 없다는 거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외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묘한 매력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외부로 풍기는 그 묘한 것을 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화장을 한다거나, 걸치는 옷을 좋게 입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주 값싼 향이다. 그러나 중후한 향을 내기란 오랜 시간 다듬어 져야 표출이 되는,  그 사람만이 나타낼수 있는 향기가 된다.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범람하다 보니, 시간이 걸려서 얻게 되는 것들은 점점 도태 되어 가는 느낌이다.

노년이 되어서도 맑은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 존경스러워 지기도 한다.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몸의 부자유스러움도 같이 온다. 그런데 항상 바른 마음을 유지하며 살고 계시는 분들을 만나면 숙연해진다. 이러한 것은 자기만의 인생철학과 스스로 만들어 놓은 주관이 뚜렷한 분들 만이 가능한 일이다.  덕망스러운 인품의 소유자는 만나기는 쉬워도 유쾌함을 지닌 분들은 만나기가 어렵다.  또한 나이들어가도 도전이란것도,  있을수 있고, 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이에 대한 생각들은 잘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아리송 할 때가 많다.

인간은 태어날 때,  신(God)으로 부터 아름다운 사람으로 똑 같이 태어난다.  이 때 부터 인간은 타인에게 향기를 준다. 애기 때는 엄마가 준 젖내음부터 풍기게 된다. 이게 아기의 향이다.

나이들어 가면서  이 향이 수도 없이 바뀌어 간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결국엔 노인 향이 아니라 노인 냄새로 변질이 된다. 어느 누구도 노인 냄새를 좋아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배운 국어 책에 나오는 글귀가 생각이 난다.   “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이는 말이다. “  라는 것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노인들은 어떤가?  손자들이 조부모를 보게 되는게 가슴 설레이는 것이 될까 ?  죽는 그날까지 자기 자신을 보는 노인이 되어지기를 기대해 봐야 한다.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넉넉한 기품과 인간적 향기가 나는 그런 노인이 되는 방법은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