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인생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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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에서 단 세 절의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정리합니다.

먼저, 곧 맞게 될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름답다 못해 황홀합니다. 관제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관제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함께 부어드리는 포도주를 말합니다. 포도주는 피, 즉 생명을 상징하는데, 관제를 드린다는 건 하나님께 생명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죽음을 앞 둔 지금까지, 바울은 복음 전파라는 주님의 소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시간, 물질, 에너지, 학식…. 그런데 이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린다는 겁니다. 바울이 2차로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는 그가 교회 리더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대화재가 났을 때, 네로 황제는 정치적 탈출구를 찾기 위해 크리스찬들을 방화범으로 몰고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바울은 활발하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다가 잡혀온 겁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한 고백 그대로 살아온 겁니다. 하나님 주신 소명을 위해 자신의 것 전부를 남김없이 드리고 이 땅을 떠난 바울의 삶이 참 아름답습니다. 또한 바울은 ‘떠날 기약이 다가왔다.’고 말합니다. 떠난다는 동사는 몇 가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 뜻 하나하나가 죽음을 바라보는 바울의 시선을 잘 보여줍니다. 첫째, 묶어 두었던 짐승을 풀어준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죽음을 고통에서의 해방으로 보고 있습니다. 소명을 감당하는 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은 바울은 죽음을 통해 앞으로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보고 있는 겁니다. 둘째, 장막의 끈을 푼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죽음을 이 땅에서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본향, 천국으로 가는 일이라고 믿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항구에 정박해 있던 배의 줄을 푼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죽음을 인생의 최종 목적지인 천국을 향해 떠나는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겁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바울의 시선이 너무 황홀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3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웠다”. 선한 싸움이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소명입니다. 완료형 동사를 사용해서, 바울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왔다고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달려갈 길을 마쳤다.” 끝까지 소명을 감당하며 결승선을 통과했다는 뜻입니다. 로마 대 화재 후 박해가 심해지면서 믿음을 버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끝까지 완주한 겁니다. 빌립보서 3장의 고백, “나는 뒤에 한 일을 다 잊어버리고 푯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이 고백대로 멋지게 완주한 겁니다. “믿음을 지켰다.” 바울에게 소명의 길은 광야와 같았을 겁니다. 이 광야의 길을 믿음으로 달려왔다는 겁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하며 지금까지 달려온 겁니다. 그 믿음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겁니다. 바울의 묘가 있다면 묘비명으로 기록두면 딱 어울릴 문장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천국을 상상합니다. 주님께서 자신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시는 장면을 그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급의 자격 조건을 적고 있습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신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 다시 오실 것을 믿고 바라는 자들이라면 다 받게 된다는 겁니다. 상급의 기준이 바울처럼 사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나 하고 긴장했는데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마지막까지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모두 구원의 확신 위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을 천국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잘 감당하는 주님의 멋진 제자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