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자유로움의 극치

1502

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것은  의식주(衣食住)이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꾸준하게  발전된 것이 바로 먹고, 자고, 입는 일일 것이다. 이것의 발전이 오늘날 초고령 사회를 만든것 같다. 이는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체인구의 20%가 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 사회가 되는 곳이 전라북도라고 한다. 2019년이 되면 전체 인구의 20%이상이 65세가 된다는 말이다. 1958년도에 정규채용시험에 뽑힌 최초의 한국일보 여기자였던 고광애란 분이 쓴 책이 있다. <나이드는데도 예의가 필요하다>이다. 이 책의 내용은 노년 문제, 세대 간 소통, 나이들어 간다는 것 등에 대한 포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년이 되어 노년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것도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노년이란게 정지 된 상태가 아니다. 다만 조금은 느려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러매체를 통해서 알고 있는 일반 상식이 노년의 머릿 속에 넘쳐나고 있다.

모든걸 배우라고 외친 인류학자인 마거릿 미드란 분이 있다. 이 분은 여러 미개한 나라의 미개한 인종들과 어울려 살면서 인류에 대한 연구를 한 분이다. 이 분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 “배우라”라는 거였다. 시대가 변해가고 있는데, 예전에 배운 상식을 가지고 자기 주장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참으로 딱한 노인들인 것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 오래 전의 묵은 지식 만을 가지고 오늘을 살려는 것은 큰 잘못이다. 물을 흐르게 해야 하듯이 우리의 상식과 지식도 시대에 맞게 갈아 주어야 한다.

노년에도 인품이란게 있다. 예전에 우리가 어리거나, 젊었을 때 들었을 법한 “로맨스 그레이”는 못 될 지언정, 외출시에 거울이라도 한번 보고 나오는 습관을 길러 봄직도 하다. 물론 조금은 어눌한 면이 있어야 노년임을 나타내는 특징이 되어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싶을 때를 종종 보게 된다. 옷매무새의 언바란스라던가. 단정해 보이는 앞머리 와는 달리 뒷부분은 까치 집을 짓고 있는 경우가 좋은 예이다. 이런 것을 탓할 수 없는것은 늙어 봐야 안다. 그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늙으면 그리 되어 진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보면, 미치도록 화가 나는 일이 있다. 집을 나설 때 운동 모자를 아주 정확히 대칭이 잘 되게 쓰고 나간다. 동네를 30분 정도 걷고 집에 들어와 거울을 보면, 내가 쓴 모자는 좌측으로 0.5cm 에서 1cm 정도 삐뚜러저 있다. 물론 힙합하는 젊은이들은 모자를 삐뚜로 써야만 제 맛이 난다고 한다. 허나 노인이 되어 그리 쓰면 정신이 좀 모자라는 사람같아 보여진다는 것이다. 두루마기 입고 멋진 구두를 신으면 좋아 보인다. 허나 양복 입고 짚신 신으면,  보기가 그리 좋지는 않다.

불교에서 쓰는 자각각타(自覺覺他)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깨달아야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자기 자신을 깨닫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들이 강연을 하는 걸 보게 된다. 별별 단체가 다 있으며, 별 별 사람들이 다 교양 또는 인문학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는 것이 참으로 많다. 이건 누가 지어낸 아주 우스운 말이 지만, 한번쯤은 생각해 볼 말이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50년대 말 쯤에  공과대학에서 교수를 하던 분들이 있다. 이 때 나온 농담이 미국의 MIT 대학 정문만 지나첬다가 한국에 오면 공대 교수가 된다라는 말이 있었다. 또하나 다른 것은 미국이민이 봇물 터지듯이 유행을 하던 70년대 말에 나온 말이다. 이 때가 자녀교육을 위해서 이민 간다는 말이 나올 때이다.  영어는 안되고 미국 가서 먹고 살길이  막막한 대졸 이민자들은,  검은 성경책 하나 들고 한국에서 목사 했었다 하고는,  사람을 모아 목사가 되는 길이 였다. 왼만큼 한국말만 잘 하면 목사가 되는 시기였다. 사실이 아닌데 사실같이 들리기도 한다.  이런걸 보거나 체험한 많은 나이 든 분들 중에 교육 수준이 좀 높은 분들은 그럴듯한 단체를 만들어, 무슨 친목회에서 회장이 되고, 무슨 연구소의 소장이 되고, 무얼 연구하는지는 몰라도 연구원 원장이 된다. 이런게 노년만이 갖게 되는 자유로움이다. 이것이 한국인으로서의 신토불이 이다. 왜냐면 모두가 종적(縱的)사회 출신이기 때문이다. 횡적(橫的)사회로 이민와서 산지가 40년이 되어도, 또는 50년이 되어도 종적사회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이 말을 했던가? “마지막에 잘 죽으면 일생에 잘못이 없어진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