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저마다에게 주어진 때와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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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봉(시카고상록회 회장)

 

요즈음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접대용 식재료를 턱없이 고급인 재료를 사용했다고 해서 언론의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에게 대통령이 멍석말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착잡한 중에 중국 고사에 천하를 통일한 유방의 리더십 이야기가 생각났다. 유방과 한신의 대화를 통한 그의 지론은 제왕은 장군을 잘 다스리고 장군은 부장을 부장은 병졸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지론이었다. 사실 대통령으로 사명을 받은 사람이 주방에까지 들어가 메뉴를 챙겨야 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참 불쌍한 나라다. 반대로 대통령 공관의 주방에서 차려진 밥상 메뉴를 들여다보고 잘못 되었다하여 대통령을 이러쿵저러쿵 말장난하는 언론도 국민도 참 불쌍한 국민이다. 아무리 인사가 만사형통이라 하지만, 국민이 선출하여 뽑은 국회의원까지 여기에 가세한다면 그 국회는 해산당해 마땅한 국회의원들의 구성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있기에 국민이 그를 선출했다. 국회의원도 주방장도 저마다의 각기 다른 사명이 주어져 있다.
나이가 먹고 할 일이 없어서는 아니데 생각이 많다. 이런 세상에서 철없이 자라며 나에게 기쁨을 주는 세 손녀의 미래가 암담해서다. 세상을 법으로는 천국을 만들 수도 없고 권력으로는 더더욱 불가능함을 나는 안다. 인간에 주어진 권력의 집행이 공평이란 정의를 벗어나면 죄의 근본이 되고 인류평화를 저해한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 얻어낸 어쭙잖은 나의 지해이다. 성경을 바로 이해한다면 사람에게는 사명과 사역(직분)은 있어도 권력은 없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허나 교회에서마저 사역을 권력으로 믿고 누리려하기에 장로를 시켜주면 내 멋대로 교회를 치리하겠다는 생각이나 혹은 시켜주지 않는다고 교회를 떠나는 신도도 본다.
이런 세상을 살면서 어제는 아내와 대화에서 미국이 총기를 규제하지 못하는 이유를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이미 너무 많은 총기가 유통되어 있기 때문이라 했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답은 공의(법)가 개인을 충분히 지켜주지 못하고 있고 미래에는 더욱 그 정도가 심각할 것이란 불안 때문에 자기호신의 방법으로 총기에 집착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인데 그 답이 아니었다. 내가 보는 미래가 더욱 심각하다는 이유는 날로 빈부의 격차도 커지고 있지만 컴퓨터기술의 발전으로 직업이 사라져가는 것도 문제다. 현제의 세상은 종교 갈등에서 인종의 갈등까지 만도 심각하지만 여기에 빈부의 갈등이란 문제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때 총기는 공격과 호신에 꼭 필요한 물건이란 것을 사람들이 믿기 때문에 집착한다. 최선의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힘에 기대어 살아 움직인다. 그 힘이 정의(正義)일 때, 그 세상은 천국이고 힘이 필요(必要)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될 때 세상에 존재하는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지옥이다. 그래서 정의가 사라진 세상에는 채권이란 권리도 힘이 없으면 행사하지 못하고 부(富)도 힘이 없으면 지키지 못한다. 이래서 미래가 두려운 사람들이 총기를 선호한다. 부를 지키기 위해서 혹은 살아남기 위해 부를 탈취하기 위해서다. 미래가 이러하니 두렵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 문제다.
여기에는 종교인도 신앙이 좋다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미래가 두렵지 않은 사람에게는 종교도 필요가 없다. 종교까지 필요치 않은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거나 무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빗대어 언급했지만 세상을 정화하는 방법으로는 법도 아니고 권력도 아닌 오직 의식을 선하게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의식을 선하게 변화시키는 방법은 인성 교육뿐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인성교육의 근본이 전문성교육에 밀려난 지가 오래고 심지어 인성교육의 선봉인 종교마저 신학이란 전문성에 지배되고 있다. 분명이 종교와 신앙은 학문만은 아니다. 신뢰와 헌신이 따라야 한다. 헌신은 선한 인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미래에 살아갈 우리의 후손을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다. 그 기도는 본질을 바로보고 자아가 그 헌신할 위치를 바로 찾아가기 위해서다. 헌신의 때를 바로 직시함도 중요하지만 그 때란 것도 근시안적 판단은 피해야 할 것 같다. 삶에서 판단은 피할 수 없는 길이지만 이웃을 판단함은 곧 심판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악의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