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좋은 편을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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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
시카고 기쁨의 교회

 

교회에는 성도의 집을 방문하여 기도하고 상담하며 종교적 돌봄을 행하는 심방(尋訪, Pastoral Visits)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가끔 심방을 부탁하는 성도들이 이렇게 반응을 할 때가 있다. “목사님, 심방을 부탁합니다. 그런데 목사님, 너무 바쁘시죠? 그럼 다음에 해요.” “아닙니다. 바쁘지 않아요. 목사가 할 일이 성도를 돌보는 것인데, 그런 일로 바쁜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아니에요. 목사님 많이 바쁘신 것 같아요. 그냥 다음에 할게요.”

심방을 부탁하면서 도리어 심방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지레짐작 ‘목사는 바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그렇게 결정하는 성도들이 더러 있다. 사실은 본인의 바쁘고 분주한 삶을 목사에게 투영시켜 스스로 인정받거나 위로 받고 싶어 하는 반사적인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의 삶은 참으로 바쁘다. 분주하고 정신이 없다. 가게와 직장일, 가정일, 개인 일, 하다 못해 대한민국과 미국의 세상 돌아가는 일을 신경 쓰느라 우리는 “바쁨” 속에 빠져 산다. 그런데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정작 잠자리에 들어갈 때에 많은 사람들은 한숨을 쉰다. ‘난 오늘 뭘 하며 살았는가?’라는 한탄을 하면서 사람들은 하루를 떠나 보낸다.

철학자 니체는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안다면, 어떤 상황이 와도 견뎌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인간이 삶의 의미를 바로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단 하루라도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부를 가진 자일지라도 삶의 의미를 잃게 되면 허무한 인생을 한탄하지만, 아무리 가난하고 편하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인생의 길을 바로 찾았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하루 하루를 마음의 풍요 가운데 살아간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삶의 의미가 결코 바쁨과 분주함 속에 있지 않다고 가르친다. 성경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가 한 마을에 가서 친분이 있던 마르다 여인의 집에 간다. 그 가정에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살고 있다. 그런데 예수가 집에 오자, 마르다는 예수에게 무엇인가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분주히 바쁘게 움직인다. 하지만 그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의 곁에 앉아 그의 가르침을 듣는다.

그 때 마르다는 예수에게 화를 내듯 이야기한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눅 10:40) 그러나 예수는 언니를 돕지 않는 마리아를 탓하지 않고, 도리어 마르다에게 지혜를 가르친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1-42)

예수는 마르다의 분주한 삶에 두 가지를 충고한다. 첫 번째는 마르다는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일을 한다. 가게 일이나 직장 일 자체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과거 우리 이민 1세대들이 그렇게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일을 많이 하면, 인간은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 아버지들의 가장 큰 후회가 한참 일할 때,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같이 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도 많은 일을 하는 것이 대단한 것처럼 생각해, 그렇게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정죄하기도 하고, 차별적인 우월의식으로 비난하기도 한다. 마르다가 예수에게 마리아를 잘못이 있는 것처럼 탓하는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두 번째 마르다는 삶의 우선순위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가 “몇 가지만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좋은 편을 택하라”라고 말한다. 그것은 곧 어쩔 수 없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삶 속에서 급한 일부터 하거나 가까운 일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필요한 일과 중요한 일, 그리고 모든 상황을 따져 가장 좋은 일을 택하여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 앞에 있는 일과 급한 일부터 한다. 그리고 정작 해야 할 일은 우선 순위 밖에 있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좋은 편을 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별히 수많은 정보와 뉴스, 만남과 관계가 쏟아지는 세상 속에서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은 종교를 넘어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좋은 편을 택하라” 다시 삶의 우선 순위를 정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