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15)…엄마 품이 그리운 아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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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병원에 신생아가 건강상의 문제가 있을 때 치료받는 병실인 NICU(Neonatal Intensive Care Unit)가 있다. NICU 병실은 주로 조산으로 인한 미숙아나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기들이 엄마와 떨어져 머물고 있다.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들도 있다. 때론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거나 죽어서 태어난 사산아도 있다. 이럴 경우 부모가 요청을 하면 죽은 태아에게 유아 세례를 베풀기도 한다. 신학적으로나 종교간·교단별 신념으로 유아나 죽은 태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에 다양한 견해차가 있다. 하지만 병원에선 채플린으로서 다양한 견해를 초월해 ‘죽은 아기’ 보다는 ‘살아 있는 부모’를 위한 위로의 차원으로 유아 세례를 베풀게 한다. Good Samaritan Hospital은 천주교 환자들이 많다. 성례를 통해 은혜가 전달된다고 믿는 천주교에서는 세례가 구원의 필수요건이고,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한다.

아무튼 나에게 응급실 다음으로 방문하기 부담스러운 병실이다. 방문시 부모가 없는 경우가 많고, 간호사들이 아기들 돌보고 우유를 먹인다. 이곳은 출입하기가 다른 곳에 비해 까다롭다. 병실 입구에서 인터폰으로 전화해서 채플린임과 방문할 환자 이름을 밝히면 간호사가 나와서 문을 열어준다. 병실에는 보통 6~7명의 아기들이 있다. 아~ 창조의 신비여! 생명의 존귀함이여! 놀라움을 금할 길 없다. 평화롭게 잠든 아기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이다. 질긴 생명력으로 작고 연약한 생명체의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 고통가운데 홀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힘겹게 투쟁하는 아기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자체가 눈물겹고 안타까워 애끓는 마음의 소원을 품고 절박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

어느 날 환자 명단에 신생아실의 2명의 이름이 있었다. 방문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바꿔 생각해보니 정말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곳임을 깨닫고 용기를 내어 찾아갔다. 한 아기는 간호사 품에 안겨 우유를 먹고 있었고, 다른 아기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처럼 가냘픈 울음을 울고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며 침묵으로 기도 드렸다. 그때 간호사가 다가와 다른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있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 부모가 유아세례를 원한다고 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유아 세례 요청의 의미는 아기가 곧 죽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제발 그 일만은 오늘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순간적으로 기도했다. “아기를 볼 수 있을까요?”, “네. 물론이지요.” 작은 생명체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눈에는 안대가 붙여 있고, 팔에는 주사바늘이 꽂혀 있고, 심장 쪽 가슴엔 심장박동을 확인하는 장치가 테이프로 붙여 있었다. 엄마의 자궁에서 다 자라지 못하고 나온 듯 작고 여렸다.

잠시 기도를 드리고 부모를 만나기 위해 산모의 병실로 찾아가니 20대 중반의 젊은 엄마와 그의 남편이 함께 있었다. 자포자기한 듯한 무덤덤함이 표정이 묻어났다.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도와주길 원하는지 물었다. 기도를 해달란다. 내심 안심이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이리라. 부모와 함께 신생아실로 가서 아기를 바라보며 엄마의 손을 잡고 기도 했다. ‘어떤 간절한 기도가 아이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을까?’,  ‘작은 생명의 호흡이 꺼지지 않기를 소망하는 부모에게 무엇으로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단 말인가?’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모른 채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 영어로 중언부언의 기도를 드린 것 같아 부끄럽고 미안했다. 날씨가 더운 것도 아닌데 나의 안경엔 성애가 끼고, 등에선 진땀이 흘렀다. “주님! 주님 만이 ~~~.”

기도 후 부모와 간호사는 ‘고맙다’ 는 인사를 했고, 그들은 아기 상태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해 작별을 고하고 병실을 떠났다. 그 후 아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방문할 기회가 없어 알 수는 없지만 부디 건강하게 퇴원하여 엄마 품에서 엄마의 젖을 힘껏 빨고 있기를 기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