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32)…그런 사람 있나요?

1160

 

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한학기 채플린 인턴을 하는 5개월 동안 해야 할 과제 중 하나가 4번의 환자 방문 대화록(Verbatim) 발표다. 대화록을 발표 후 통과의례가 바로 피드백(Feedback)이다. 방문 사례를 기억해 대화를 적고 환자, 자신, 신학적 그리고 목회상담학적 분석을 해야 한다. 또 ‘왜? 이 사례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설명도 요구된다. 준비해서 발표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발표 후 날아오는 피드백은 때로는 ‘절망’과 ‘분노’를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피드백은 무엇이 잘되었는지, 문제인지, 개선할 사항이 뭔지를 찾아가는 자기반성과 배움의 귀한 여정이다. 이때 중요한 건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발표한 사람에게 어떤 인신공격이나 잘못을 지적함이 아니라 서로간 배움의 기회라는 절대적인 신뢰가 요구된다. 이렇게 슈퍼바이저와 동료간의 신뢰가 쌓이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곳에 모인 6~7명의 사람들이 살아온 배경, 성격, 나이, 가치관, 인종, 종교교리의 차이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첫 학기에는 다양성과 문화적 이해 부족으로 인해 대화 중 오해도 생기고, 상처를 주고 받으며 분위기가 무겁게 흘러가기도 했다. 의도하지 않고 던진 질문과 피드백 때문에 다른 미국 여성 채플린 인턴은 성차별적인 언어로 받아들여 눈물을 흘리며 그만두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고도 했다. 나도 언어장벽과 문화차이에 대한 몰이해에서 오는 무기력감에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신랄한 평가에 좌절하며 이 과정을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끝까지 버텨보자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신경전적인 피드백이 오고 가는 도중에 슈퍼바이저는 발표자에게 꼭 하는 질문이 있다. “지금 기분이 어떠냐?”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 정서상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런 것 같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 내가 실수했다. 잘못을 알려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등으로 대답을 하며 점점 외소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면 다시 묻는다. “기분이 어떠냐?”고. 그럼 잠시 멍해진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아니 솔직히 내 감정을 드러내도 좋을지 몰라서가 맞는 말이다. “배울 수 있어서 행복하고 피드백이 참으로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여전히 의아한 눈초리를 하고 바라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기분을 물었을 때는 ‘분노’, ’슬픔’, ‘기쁨’, ‘혼란’, ‘행복’ 등의 솔직한 감정을 듣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가 났거나, 무시 당했다고 느끼거나, 차별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도 솔직히 표현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솔직하면 관계가 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솔직한 감정표현을 해도 안심할 만큼 신뢰가 쌓여갔고, 감정 표현도 가능해졌다. 때로는 당혹스러울 만한 피드백이 날아와도 배움과 성장을 위한 조언이라 믿기에 토론은 잔인해도 끝나고 나면 서로 등을 토닥이며 함께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잘 던지는 말이 있다. “채플린이 아니라 면접관 같아.”, “이 대화의 진행이 누구의 필요에 의한 것이냐? 환자냐? 채플린이냐.” , ” 방문 후 환자에게 도움이 되어 채플린은 행복하다는데, 과연 환자의 입장도 그럴까?” 라는 식의 말로 나도 그들만큼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발표 때는 깨닫지 못한 걸 비수처럼 날아오는 질문을 이해하고 답하면서 소 여물 먹듯 되새김질과 소화에 1시간 반이 걸린다. 가치 있는 피드백의 소중함을 배우게 되었다. 허나 모든 피드백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긍정적 피드백이 있는 반면 부정적 피드백이 있기 때문이다. CCL(Center for Creative Leadership)에서 효과적인 피드백 기법을 개발한 Ann Flaherty 박사는 “피드백이란 당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정보다. 피드백을 받음으로써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그것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고 말한다. 설교 후에도 피드백이 필요한 건 아닐까? 삶과 사랑에 대한 피드백을 나눌 그런 한 사람을 가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