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6)…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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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주일 아침, 운명의 날이었다. 나의 무거운 마음과 달리 10월의 가을 하늘은 눈부시게 화창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하이웨이는 내 인생의 미래를 예견하듯 막힘이 없었다. 나는 오늘 내 앞에 놓인 바위를 대면해야 했다. 그 바위에 짓눌려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바위를 부숴 진흙탕 길을 잘 깔린 돌다리로 바꿀 수 있는 위험한 기회에 직면한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계속되는 갈등. 관찰과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두려워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내가 먼저 그만두겠다고 말할걸 그랬나? 그럼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지 않아도 되잖아. 안전지대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잖아. 그러면, 나는 행복할까? 그러면, ‘되게 하리라’ 하신 하나님은 계획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감이 교차했다.

“만약 이곳에서 멈춘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러겠지. 비록 1~2년 늦어진다 해도 세상이 뒤집히지는 않아. 그러니 잘릴 것을 예상하고 마음 편하게 있는 모습 그대로만 보여주자.”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가 아니기에, 넘어지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먼지 털고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넘어졌다고 자리 깔고 누워 있을 필요는 없지 않는가. 최악의 상황과 최상의 상황을 그려보니 이제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두려움이 분노로 변했다. 어느 병원 슈퍼바이저는 힘들어 못하겠다는 인턴에게 끝까지 해보라고 격려와 용기를 주었다는데, 여긴 열심히 하겠다는데 자르려 하다니. 그것도 몇 개월이 지나고도 실수를 계속하는 것도 아닌, 이제 인턴 시작하고 겨우 한달 정도 지났을 뿐인데. 차별이라 느꼈다.

병원 예배실에서 하나님께 한숨 섞인 절박한 기도를 드린후 오피스 가서 방문할 환자 리스트와 필요한 서류를 챙겼다. 8시 30분. 방송으로 아침 기도를 드리며 희망의 바이러스를 병원에 퍼트렸다. 10시 30분. 마음의 상처나 정신적인 고통으로 입원한 환자들이 있는 병동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처음 영어로 드리는 예배 인도와 설교였다. 예배 도중 슈퍼바이저가 들어와 나를 잘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 앉는 것을 보았다. 예배가 끝나자 수퍼바이저는 내가 병원에 도착해서부터 지금까지 한 일을 묻고 컴퓨터에 보고할 내용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예배와 설교에 대한 느낌도 적었을 것이다.

그 후 환자를 방문하고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을 지켜보며 슈퍼바이저는 계속해서 자신의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했다. 다음 단계는 응급실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인데, 그때까지 응급실이 조용했다. 슈퍼바이저는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전화하라며 12시쯤 떠났다. 다행인지 오후 5시까지 응급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날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주일이 지나 화요일 오후 4시. 다시 온콜을 하기 위해 병원에 갔다. “어제 스텝회의에서 어떻게 결정되었을까? 수요일 수업이 끝나고 결과를 말해 줄까? 그만두게 할거면 미리 말해주면 화요일 밤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수요일 수업하지 않아도 되잖아. 수요일 오후에 결과를 듣게 된다면 웬지 더 억울할 것 같다.” 고 생각하는데 4시반쯤 슈퍼바이저에게 전화가 와서 만났다. 심장이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최고의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전체 회의 결과는 계속 같이 가기로 하되,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지켜보기로 했단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북받히는 서러움을 삼켰다. 그날 저녁 5시반에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응급실로 향했고, 슈퍼바이저는 내 뒤를 밟았다. 여러 명의 스텝들이 환자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응급실 통로에 낯익은 얼굴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40대 초반의 백인 남자로 노숙자에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전에 응급실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기도해 주었던 환자였다. 왜 여기 다시 왔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눴다.

“목 마르다.”고 했다. 물 한잔을 떠다 주었다. 그 때 응급환자가 도착해서 그에게 작별 인사후 응급환자에게 갔고 차분히 상황을 해결해 나갔다. 저 멀리서 매의 눈으로 나를 지켜보던 슈퍼바이저가 양쪽 엄지 손가락을 높이 들어 주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욥의 고백이 귓가에 들려온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