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죽음도 배워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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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은퇴한 후에도 배워야 할게 많다. 그 중에서도 배워야 할 것은, 행복 공부도 해야 하고, 마음 공부도 해야 한다.  또한 건강을 지키는 공부도 해야 한다.  모두가 자신을 위한 배움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다 죽게 되는데, 죽음에 대한 공부는 없는 것일까.  죽음이란 것은 정말로 남의 일이 아니다. 내 대신 누가 죽는 다는 것은 상상도 안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이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모든 사람들은 미지에 닥아 올 세상에 대하여 궁금해 한다. 그렇다 하여 죽음만을 기다리는 삶은 옳지 못한듯 하다.  생과 죽음 사이에는 여러가지 선택과 고민을 하면서 개인이 성장을 한다. 노인이라하여 정답없이 사는 것이 과연 옳은지도 생각을 해야 한다.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는 죽음이란 것이 거의 사라진 느낌이다.  이에 대한 이유는 현대의학이 가저다 준 선물이기도 하지만, 사회가 달라진 원인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전에는 죽음을 집에서 목격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지 않기에 마치 사라진 느낌으로 우리는 죽음을 보고 있다.  굳이 죽음이란 걸 접하게 되는 것은 장례 행렬의 자동차가 지나는 것을 볼때, 잠시 죽음을 보게 되는게 오늘날의 실정이다.

도대체 죽음이란걸 배우면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게 되는 걸까. 죽은 다음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이 죽은 당사자는 모르지만 살아 있는 가족이나 친지에게 여러가지 어려움을 남기고 가기에 하는 말 같다. 사회가 복잡해진 원인이 제일 크지만, 현대의학이란게 일반인들이 알기에는 이해 할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부터 서서히 기력이 약해 진다. 그런데. 이것을 감지 할 때 쯤에는 이미 많이 쇠약해 진 상태에 이르게 된거다. 여기서 부터 우리는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해두어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된다.  그 이유는 지금은 누구나 사망 전에는 병원으로가서 눕게 된다.  문제는 살아 날 가망이 없는데도 의사는 여러가지 검사를 시도한다.  죽음이란 자연사가 제일 좋은 것인데, 병원에서는 자연사 하도록 내버려 두지를 않는 듯 하다.  노인이 죽기전까지 병원은 매출 증대 효과로 만 환자를 보는게 아닌지가 궁굼해 진다.  죽기전까지 뭐그리 많은 검사를 해야 만 하는 걸까 ?   부모를 생각하는 자식들은 노쇠한 환자의 연명치료 거부는 불효라고 생각을 한다.  늙어서 정신이 오락가락 할 때 쯤이면,  죽음에 대한 생각은 없고 아픈 것만이 두렵게 닥아 올듯 하다.  노년이 되면 섬망( 譫妄=Delirium ) 이란 병에 걸리게 되어 있다. 섬망이라 함은 서서히 나빠지는 뇌신경 질환으로 감각기능 이상 증상과  감정변화, 불면증, 언어장애, 초조함이라던가, 환각, 환시 등의 증상이 생기는 것을 말 한다. 표현을 잘 못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환자는 비애(悲哀)를 느끼게 될 것이다. 행복이란 세속문화 속에서 익숙해진 우리 모두는 죽음이란 걸 잘 모르고 있기에 죽음 앞에서 당황하게 됨을 보게 된다.

스위스의 유명한 죽음 학자  Elizabeth K. Ross 는 인간이 죽음을 받아 들이기 까지 다섯단계를 거친다고 그의 저서에 밝히고 있다.  죽음에 대한 통보를 받게 되면, 죽음을 부정(denial)하고, 바로 분노(anger)의 감정을 나타 낸다 한다. 이것이 조금 가라 앉게 되면, 신(God)과 타협(bargaining)하여 회개의 단계로 접어 든다 한다.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접어들면서 우울(depression)에 빠지게 된다는 거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분개하지 않고 수용(acceptance)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불편함과 여러 통증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는게 죽음의 전초 단계라고 정의를 내렸다.   죽음은 고통도 없고 두려움도 없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과정이며, 신(God)이 인간에게 준 은총으로 살아온 기적(miracle)을 마무리 하는게 죽음이 아닐까하고 생각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