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지나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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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것은 추억이다.  다르게 표현을 하면, 과거는 누구에게나 다 있다. 그것이 좋던 나쁘던 각자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모두가 지난 일이다.  과거의 추억 중에 좋은것만 기억속에 남아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다.  지난 것을 생각해 보면 순간 순간들이 모두 소중했던 것들인데,  지금에 와선 누구나 그런것들 중에 후회로 남아 있는게 있다. 노년들은  매일 매일에  또 다른 추억거리가 남게 되는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쉬지않고 추억거리를 만드는 공장 같기도 하다. 노년에 남아도는 시간속에 그리움의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 와도 멍하니 있게 된다.  잠시라도 양지 바른 곳에 앉아 있을 때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추억도 있을 법 한데, 그런것은 기억의 창고에서 찾아 내기가 쉽지가 않다.  이런것은 노년이 되어 강하게 나타나는 망각의 힘일 것이다.  추억 속에 이별은 기억이 나지만,  만남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 한 것은 다 이런 망각 때문 일 것이다.

옛 어른들의 말을 빌리면,  ‘은퇴’ 란 참으로 모호한 말이다. 은퇴는 ‘숨는다'(隱)와 ‘물러난다'(退)의 조합으로 되어 있다. 풀어보면, 공을 이뤘으면 몸을 뒤로 물리고(功成身退), 물러난 후에는 숨어 지내며 다시 부름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은퇴를 의미하나 보다. 그러나 현대에서의 은퇴는 조금 다른 듯 하다.  은퇴란 “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으면서 주변과 어울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 “ 이라 이해를 해야 한다.  은퇴후에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중요하지만,  행복하게 살자면, Well-being 도 중요한 것이다. 여유롭게 삶을 추구하는게 뭔지를 알아야 한다. 또한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활동도 해야한다. 이렇게 말로 표현을 하기는 쉽다.  늙어 봐야 안다. 몸의 움직임이 부자유스럽게 되면 모든것은 막장에 속하게 된다. 연극 무대의 마지막이 되면 커튼을 내리듯이 우리 모두의 인간은 다 이와 같이 된다.  커튼이 내려지는 그 순간까지 열정을 다해서 주어진 배역을 잘 이룬 사람이 박수를 더 받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 나면서 부터 먹어야 하는 생리적인 욕구를 가지고 태어 난다. 이 욕구는 죽는 그 날까지 유용한것이다.  이와 병행해서 안전하게 삶을 유지해야 하는 안전의 욕구가 생긴다.  또한 나이가 먹어 감에 따라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할 욕망도 커진다.  사회적으로 인정 받아 가며 살다 보면, 타인으로 부터 존경 받고 싶은 욕구도 생긴다.  이러한 욕구를 채우며 살다 보면 은퇴를 하게 된다.  이 때 부터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힘 빠진 노인에게는 자아실현을 할 힘은 턱 없이 모자란다.

지나간 우리 노년들의 젊은 시대에는 정직이니, 진실이니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에 굳이 그런 표현없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것은 믿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받아 들임이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오염된 정보가 수없이 많다.  불신과 불신의 대결 속에 사는 오늘의 노인들은 불안한 환경을 잠재울 여력이 없다.  세상은 헐떡거리며 빠르게 변화하는데, 노년은 여유롭다 못해 느긋한 걸음으로 세상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기에 현재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다.  서로가 의지하며 행복하게 하루 하루를 보내며 사는 노년들도 많다.  나이들어 찾아 오는 슬픔의 감정을 억제 하기란 어렵다.  이 감정은 젊어서 알았던 실패나, 패배감에서 맛 본 감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슬픔의 감정은 같이 살아 가는 감정임을 이해하는 사람은 지나간 시대 속에서 오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칭하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