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출발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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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 중에 “Happy“라는게 있다. 매년 정기적으로 듣게 되는 Happy New Year에서부터, Happy Birthday 등등 뭐든지 좋은 일이 있으면 Happy를 앞에 붙인다. 참으로 쓰기 편하고 좋은 단어 이다. 이렇게 우리 생활 주변에 맴돌고 있는 행복은 항상 내 옆에 있는 걸까? 요즈음 세상의 행복은 바탕에 금전이 있어야 하는 것이 첫째 조건이라고들 한다. 금전 없는 행복은 오래 가지를 못하는 걸까. 행복은 자신이 만드는 거라 했다. 그런데 작은 행복이라도 만들려면 재료가 있어야 한다. 재료는 곧 돈이 있어야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신(God)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공평하게 나누어 준게 있다. 그게 뭔고하니 소리이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 날 때  운다. 안울면 꺼꾸로 잡고, 볼기를 때려서라도 울게 한다. 처음으로 울 때의 소리가 음악적으로 모두가 같다는 이론이 있다. 어디서 태어나건 어떤 인종적이건 관계 없이 첫 울음이 모두가 “라”(A) 음(音) 이라는 거다. 그래서 모든 악기를 조율할 때 피아노가  “라”(A) 음을 친다.  이 음을 기준으로  모든 악기가 화음을 이룬다.

세계경제의 글로벌화와 함께 엄청나게 부(富)를 쌓아 둔 사람들이 이젠 고령화가 되었다. 있는자나 없는자나 죽음의 문턱에선 다 만난다. 신이 우리에게 태어 날 때 “라” 음을 똑 같이 나누어 준 것과 같이 죽음 앞에서 다 같이 하나도 못가지고 가게 한다. 없는 자들은 죽음 앞에 아주 편하게 죽음을 맞이 하지만, 가진자 였던 사람들은 죽음 전에 엄청난 번뇌를 갖게 된다. 그래서 신은 평등하다고 한다. 없는 자들은 유산의 고통 속에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풍족한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유산이란 것에 한 없는 고통을 맛 보아야 한다. 세계적인 슈퍼 부자가 참 많은데, 그들중에 일부는 곧 죽음을 맞게 된다. 세계적인 부자들을 모아서, 그들이 내야 할 상속세를 계산 해 보니,  2018년 한국의 GDP에 9배를 내야 한단다.

경제학자들이 찾아낸 행복은 일시적인 만족감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더 강한 행복을 찾다가 결국은 찾지 못하고 죽게 된다고 한다. 행복이란 것은 단기적인 즐거움의 추구가 아니라 좋은 삶의 결과물인 것 같다. 우리 주변에 가질것 다 갖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나, 그들의 어느 한구석은 어두운 면이 있다. 돈이란 것은 어느 일정 수준까지만 행복과 동행을 하지만, 많게 되면 쉽게 변수를 가지고 나타난다. 이러한 변수를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이라 하는데, 소득이 증가한다 하여 증가한 만큼 행복이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과거 몇년 동안 소득이 증가를 했지만, 행복이 증가 했다는 소린 듣지 못했다. 이런 결과는 긍정적인 변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 일 것이다.  즉, 강한 사회적 비교를 하며 사는 사람들은 행복지수가 아주 낮다. 항상 남보다 더 소유하려는 욕심이 행복으로 가는 문을 닫게 만든다.

하바드대학 졸업생  814명의 인생을 72년 동안 관찰한 결과를 발표한 것이 있다. 80세 이상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은 62명이 였다 한다. 그들은 인간관계가 좋았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장수의 비결이란 결론을 얻은 것 같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사회공동체 안에서 자기 주장을 관철 시키려는 아집을 갖고 있다. 이런 자들은 행복이란 걸 모르는 체 사는 것과 같다. 예수가 태어나기 300년도 더 된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가 그렇지 못한가는 결국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또 하나,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다. 되새겨 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