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크리스천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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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명(시카고신학대 교수)

지난 10년 미국에서 요가는 유행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왔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유행해 ‘크리스천 요가’라는 말까지 생겼고, 요가를 교회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교회도 많아졌다. 엊그제 눈길을 끄는 인터넷 뉴스 기사 하나가 있었다. 작년 9월 한국의 예장통합 교단이 산하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서 제출한 ‘요가에 관한 연구보고서’가 채택했고, 그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의 교회에서도 이슈가 될 정도로 요가가 인기였는지 몰랐었기에 그 기사는 더 흥미로웠다.

그 보고서는 요가가 본질적으로 힌두교의 윤회설과 범신론적인 면을 담고 있어서 이를 접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비성서적인 구원론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허용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 결론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엔 이 글에 맞지 않는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다. 다만 미국에서의 상황만을 살펴본다면, 힌두교, 불교, 도교와 같은 아시아 종교의 수행법이 미국에서 개신교인들의 명상수련의 도구로 이용되어온 역사는 상당히 길다.  선(禪)수행이나 Tai-chi(태극권) 같은 체육 무술을 도입해 교인들의 영성훈련을 도모하는 개신교회도 흔히 볼 수 있다. 최근 요가는 이보다 더 상업적인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 둔갑해 인기를 끌고 있다. 그에 대한 논란은 늘 있었다. 그 중심엔 기독교인들이 아시아 종교의 수행법으로 복음의 진리에 다가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에 대한 입장은 예컨대 몸의 자세나 숨을 쉬는 방식은 종교보다 더 근원적인 생명의 현상이라는 긍정적인 것에서 종교의 우주관이나 신앙이 거기에 녹아있기에 부적합하다는 견해까지 다양하다.

요가와 기독교의 관계에 관해 세 가지 입장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요가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생활 스포츠이기 때문에 믿음이나 종교와는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 있다. 그리고 요가를 통한 깊은 마음의 수련으로 기독교의 진리에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요가는 힌두교의 믿음을 실천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기독교 신자들이 따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요가에 대한 이해에 따라 모두 맞는 얘기다. 하지만 개신교회의 입장에선 이런 논란을 반성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개신교의 어떤 부분을 보완하고자 아시아 종교의 영성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기사를 보면 이 질문이 미국의 개신교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내가 보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아시아 종교의 깨달음을 위한 수행법이 미국에선 단순히 건강을 위한 피트니스 정도로 전락하는 현실이다. 특히 요가의 경우는 깨달음은 배제된 채 빠르게 오락과 소비문화로 희석되었다. 이를 요가의 오랜 전통에 대한 모독에 대한 모독이라 보는 사람도 있다. 실제 요가를 접하는 올바른 자세는 요가를 통해 인도의 오랜 사상을 체험한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그럴 용기가 없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으면 어떨까. 몇 년 전 인도에서 유학 온 학생이 미국의 요가 열풍을 보고 이런 말을 내게 했다. 힌두교가 지배하는 인도 사회에서 천대받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힌두교 문화의 모든 것과 대립하고 거부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요가 사랑에 빠진 일부 미국교회를 보고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고.

그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해 딸린 수많은 댓글들을 훑어보았다. 교회에 대한 비판 일색이었다. 요가도 못하게 하는, 탐욕스럽고, 배려할 줄 모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한국 개신교다운 결론 등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기독교 사상>이란 영향력 있는 월간지에서도 최근 이 문제를 다뤘다니 더 진지한 논의들이 나오겠지만 한국 교회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