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타인의 허물을 덮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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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사람이 사람을 평가를 한다.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듣고 보는 일이다. 남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비방(誹謗)은 안된다. 우리 인간들은 눈에 보이거나, 들리는 말이거나, 하는 행동에 대하여 비판을 하고 싶어 한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반대 성향을 나타내는 비방을 한다. 이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고처야 할 듯 싶다. 비방은 남을 비웃고 헐뜯어서 흉 본다거나, 타인의 결점에 대하여 왈가왈부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타인의 결점보다 자신의 결점이 100배가 커도 모른다. 그런데 그 비판을 한 후에 무언가가 달라진게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비판한 사람만 괴로울 뿐이다. 뒤늦게 깨달은 것은 아무 이득이 없다는 것일 것이다. 비방이란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비방의 결과는 서로가 서로에게 불신의 벽만 높아지고 자신은 그 찌꺼기인 분노(憤怒)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공격당하고 있는 사람은 수치심으로 잠적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비방은 밥투정하는 아이 같은 아주 못된 습관일 뿐이다. 남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모자라는 듯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이야깃 거리가 될 뿐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조금 현명한 사람들은 남을 비방한 것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낀다. 언젠가는 자신도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비방을 하려는 마음이 드는 순간에 자신을 조절 해야 한다. 그동안 자기가 비판 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인간이기에 무언가 느낌이 올것이다. 비판받기 좋아 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를 비판하면 그들은 방어적이거나 위축이 될것이다.
남의 허물을 덮어 주려는 아름다운 마음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화가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초상화를 부탁 받고 고민에 빠졌다. 이유는 대왕의 이마에 큰 상처가 있어서 그대로 그릴수가 없었다. 화가는 고민 끝에 좋은 생각을 해 냈다. 대왕이 이마에 손을 대고 쉬고 있는 모습을 그려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렇듯 타인의 허물을 감싸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 같은 성경 구절이 있다. 타인의 잘못은 일곱번이 아니라 일흔번까지라도 용서를 하라 했다. 불교에서는 불견(不見)이란 말이 있다. 남의 잘못을 보려고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 되돌아 보고 옳고 그름을 살피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결점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잘못만 비난하는데 길들여져 있다.
비방이라는 것 중에 제일 나쁜게 험담이라는 거다. 험담을 잘 하는 사람은 남을 낮추고 자신이 우월함을 남에게 알리고 싶은 심정일게다. 험담이 얼마나 나쁜지는 성경에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는 “….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라고 되어 있다. 험담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 된다. 유대인들은 자녀가 친구를 사귀기 시작할 때, “너는 누구도 험담하지 말라”와 “남을 헐뜯는 험담은 살인보다 더 위험하다.“ 라고 부모가 자식에 알려 준다.
‘비방’의 비(誹)는 헐뜯는다는 뜻이고, 방(膀) 역시 헐뜯는다는 의미다. 비판, 비방, 험담 안하는 좋은 세상을 우리 모두 같이 만들어 같으면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백해무익(百害無益)한 것임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