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희망적인 기대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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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2020년의 한국인 기대 수명은 83세라 했다.  지금은 100세시대라고들 인식하며 산다.  그런데 여기서 100에서 빼야 할 숫자가 있다.  건강 수명이 80년이라면,  나머지 20년은 신체적, 정신적인 기능 저하를 갖고 살게 된다. 때로는 병이나, 장애로 자립이 어려워진다는 거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병원에 며칠이라도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면,

입원 전 보다는 훨씬 쇠약해진 상태로 병원 문을 나서게 된다.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할 기간이 100세 시대에 10%만 빼도 10년이란 세월을 우울하게 보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누구나 이러한 일이 본인에게는 오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러기를 두 손 모아 빌고 싶은 심정이다.

나이들어 가며,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여러가지 질병이 나타난다. 지금은 거의 다 병원에서 숨을 거두는 경향이 높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목격 할 기회가 없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살던 집에서 가족이 지켜 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 하기를 원하는데, 미국은 80% 정도이고,  한국에서 75 % 정도가 요양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 범위라고 하기에는 모순성이 조금 있지만, 한국과 미국을 기준으로하는 생활 패턴에 크게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핵가족화와 도시화는 점점 더 가속화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가 세상을 하직 할 때가 오는데 이를 굳이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다. 죽음에도 약간의 다름이 있다. 지금까지 호스피스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이 든다. 호스피스 (Hospice) 간호라는 것은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 질환환자를 돌보는 서비스이다.  이는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 할 때까지 의학적, 신체적, 심리적 또는 영적 도움을 제공한다.  이것은 마즈막으로 헤여저야 하는 이세상에서의 존엄성을 유지 시켜 주며, 아름답게 삶을 마감하게 해 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우리 주변으로 깊숙이 침투된 연명치료, 존엄사, 고독사 등이 사회적인 의제가 된지도 오래 되었다.

우리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 하여야 한다.  사회적인 삶과 개인적인 삶으로 구분 할 수가 있다.  생명 존엄의 기치를 내 걸고, 나타난 학문이 생사학(生死學)이다.  생사학(life and death studies)이란 삶과 죽음의 문제를 의학과 종교, 철학, 심리학, 사회학, 사회복지학 등, 다양한 학문과 관련지어진 융합학문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유럽의 여러나라들은 삶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성을 탐색하는 긍정의 학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보는 현재의 상황은 의학의 혜택이 죽음의 연장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병원에 가서 기계호흡장치를 달고 인공 영양을 받으며 죽음을 연장 시키는 것이다.  이 때는 막대한 치료비 부담만 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환자의 존엄이란 건  없다.

무의미한 생명연장보다는 환자가 평온하게 삶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게 기대수명 속에서 평온한 끝이 되면 좋을 듯 하다.  누구나가 그렇게 되기를 희망을 하지만, 모두가 뜻한데로 되지가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괴짜 CEO 인 Dave Asprey 는 자신의 기대희망 수명을 180 세로 책정을 해 놓고 있다.  그는 노화와 장수비밀은 현대 과학이 해결 할 거라 굳게 믿고 있다. 현재도 90이 넘은 사람들이 사회의 기여도가 높은 사람들이 많기에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거다. 지금으로선 믿어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