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하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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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박사(횃불재단 트리니티 목회학 박사 프로그램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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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2). ‘라가’는 “이 머리 빈 깡통아!”라는 의미다. 마음의 살인도 살인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보통 칼로 사람을 찔러서 피를 흘려야 살인인 줄 아는데, 하나님은 손에 칼을 들기
전에 마음에 칼을 가는 사람도 살인한 자와 똑같이 보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대상 28:9).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해 보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6:2).
주님은 살인에 관해 결론 내린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일 3:15).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형제”다. 누구에게 분을 내는가? 형제에게 낸다. 그리고 이것이 살인이다. 성경은 불의에
대한 분노나,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악인에 대한 공적인 분노를 내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신자는 세상의 악에 대해서, 정의가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 공적으로 분노해야 한다. 예수님이
정죄하는 분노는 형제에 대한 분노요 이웃에 대한 사적인 미움이다.
성경에서 형제라는 말은 아주 가까운 사이를 뜻한다. 눈을 뜨면 날마다 보고 만나야 하는
사람이다.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교인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이
형제다. 맥스 루카도라는 기독교 저술가는, 이렇게 우리가 날마다 눈을 뜨고 보아야 하고 살을
비비고 살아야 하고 그래서 분노하기 쉽고 욕하기 쉽고 어떤 면에서는 서로 상처 주기 쉬운
사람을 가리켜 '꼼짝없이 매인 사람들'이라는 재치 있는 표현을 썼다. 그렇다. 꼼짝없이 매였다.
꼼짝없이 매이다 보니까, 자꾸 짜증이 나고 화나고 속에 쌓이는 것이 많아진다. 이런 일은 전혀
모르는 사람과는 일어나지 않는다. 형제라고 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때문에 받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형제에게 화를 낼 수 있다.
심리학자의 말을 들으면 오늘날 약 80% 정도의 부부가, 마음에 숨겨놓고 쌓아놓고 있는 분노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미국의 어느 상담가는 자기를 찾아와서 상담하는 부부나 개인을
놓고 한참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도대체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을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마음속에 가만히 숨겨 놓은 분노가 있는지 확인해 보면 10중 8, 9는 적중하다고
한다. 문제의 뿌리는 분노 속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분노를 없애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주님은 미움과 분노를 없애라고 말씀하신다. 심지어 미움을 없애지 않는 한 예배드릴
자격도 없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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