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런 ‘문디 자슥’들이 많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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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환 목사(시카고 기쁨의교회 담임)

사는 게 뭐 이런가 싶다. 교우들과 만나 뜨겁게 예배를 할 수가 있나, 식탁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교제를 할 수가 있나. 그 뿐인가. 사람을 만나 허그는커녕 악수조차 할 수도 없으니 사람 간에 있던 정도 없어지겠다 싶어 마음이 쓸쓸해진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아프고 쓰린 소식들로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러다 만나는 마음 밝아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래,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워’라고 고백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예를 들면, 이런 ‘문디 자슥’에 관한 이야기다.

오랜만에 서울 올라와 만난 친구가 이거 한번 읽어보라며 옆구리에 푹 찔러준 책.

헤어져 내려가는 고속버스 밤차 안에서 앞뒤로 뒤적뒤적 넘겨 보다 발견한, 책갈피에 끼워져 있는 구깃한 편지봉투 하나. 그 속에 빳빳한 만 원짜리 신권 다섯 장. 문디 자슥, 지도 어렵다 안 했나!

차창 밖 어둠을 말아대며

버스는 성을 내듯 사납게 내달리고,

얼비치는 뿌우연 독서등 아래

책장 글씨들 그렁그렁 눈망울에 맺히고.

-윤중목, <오만 원>

궁색하던 신학생 시절, 처음 만난 목사님이 기차역까지 직접 운전하여 데려다 준 적이 있었다. 아직 2시간이나 남은 기차 시간, 역 앞 빵집에서 맛난 것 사 주시며 이런저런 이야기 들어주시더니, 떠날 무렵이 되자 책 사 보라며 봉투까지 건네시는 것 아닌가. 사람을 최선을 다해 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배운 날이었다.

유학생 시절, 가장 친한 벗이 갑작스런 아버지의 소천으로 한국에 급히 들어갔다. 함께 갈 수 없는 상황이 미안하여 페이스북에 ‘혹 저를 알고 그 친구를 아는 분이 근처에 계시면 제 대신 조문을 가 줄 수 없겠느냐’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고 그저 그 즈음에 페이스북 친구가 된 어느 목사님이 선뜻 ‘제가 가 보겠습니다’라는 댓글을 올렸다. 물론 그 친구를 아는 분도 아니었다. 당시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이기도 했던 그분은 정말 한 시간 거리의 장례식장에 가서 나를 대하여 조문을 하셨다. 몇 년 뒤 미국에서 만난 그 목사님은 내 차에 타고 내리시면서 햇빛 가리개 뒤에 봉투를 끼워 두고 가셨다. 병석의 아내를 10년 넘게 돌보고 계신 분이 말이다.

세상이 참 살벌하고 차갑다고 느끼다가도 이런 분들을 만나면 마음이 녹아내린다. 그만큼은 못해도 흉내라도 내며 살아야겠다고 다짐 같은 걸 하게 된다. 교회에서 코로나 사태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진행하는 물품 도네이션, 서류미비 상태의 싱글맘 렌트비 지원 등에 손 내미는 분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 본인도 어려운 거 뻔히 아는데, 더 어려운 분 돕겠다고 나선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고 하신 모양이다. 아, 위의 시를 자신의 책에 소개한 오민석 작가도 이런 말을 남겼다.

“이런 ‘문디 자슥’들이 많은 세상이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