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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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관헌 칼럼니스트

2019.6.25은 김일성이 스타린과 모택동의 국제공산당 세계지배목적에 따라, 동족인 남한을 짓쳐들어 온지 69년이 되는 해이며, 미국 등22개이 유엔기치를 들고 국제 공산군(중공군 등 참전)과 치열한 전투 끝에 유엔감시하에 탄생한 대한민국을 멸망의 위기에서 지켰을 뿐 아니라,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의 경제협력으로 전후복구와 기적적성장을 이끌어 내고, 끝내는 인공(조선인민공화국)등 공산주의체제의 멸망과 개조를 불러오는 사이, 대한민국은 세계10위권의 선진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반대로 북한은 최빈국으로 남아, 자유민주의체제의 우월성을 만방에 과시하였다. 필자가 미국에 올 때(1970년11월)만 해도 국민소득이 대한민국을 앞장섰던 북한, 독재, 폭력집단 조선인민공화국은 휴전 후에도 틈만 있으면 간첩과 무장군을 남파하여 인명살상과 치안을 흔들어 놓았으며,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여 남한을 압박하고, 기상천외한 온갖 방법으로 학생들 사상을 개조하고 그들의 혈기를 이용 남한의 정치, 경제, 교육을 파탄 내는 일을 끊임없이 계속하여, 급기야 합법적인 정부수반인 대통령을 불법 부당한 방법으로 탄핵, 감금, 2년을 보냈다. 합법을 가장한 증거 없는 재판의 결과로 대통령은 감옥에 있고, 수많은 반대파를 필자가 어려서 체험한 공포의 신 인민재판같은 행정부의 집사가 되어버린 사법부를 이용, 적패청산이란 이름으로 감옥에 보내놓고, 대통령유고라며 헌법상 보궐선거를 치룬 대통령이 전 대통령의 잔여임기가 아닌 새로운 5년의 임기를 채우고 나아가서 영구집권을 하겠다며, 유사 공산주의 중국을 대국으로 섬기고, 세계최빈국대열의 독재자 북한의 눈치를 보며 10대 선진경제를 2년 만에 17위로 급망(急亡)시키고 있다.

한참을 북침이라 외치던 3.86주사파 출신들과 같이 문재인이 <한국전쟁은 쌍방과실>이라 하더니, 한 주일 만에 망령(亡靈)든 사람처럼 180도로 돌아서서 6.25참전용사를 불러놓고는 갑자기 <김일성의 남침>이라고 확인하였다. 도대체 이 사람이 제정신인가? 이렇게 국가 최고 군 통수권자가 정치적이 건, 제 사상적 표현이건, 아니면 진심, 망심이건, 그 어떤 것이던 나라가 이렇게 망하는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들 문재인 세대는 우리세대와 지극히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것이 6.25의 현장에서 겪었던 우리들의 생생한 경험과 혹 부모와 선생, 공산주의자 편에서 얻어들은 거짓이야기를 믿고, 우리들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다. 문재인은 그의 아버지가 북한의 하부지방공무원이었고 그를 죽음에서 살려준 미군함정에 의하여 구출된 함흥철수, 피난민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행운아요, 날 때부터 미국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는 자였다. 그리고 가난하였을 피난민자제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혜택을 만끽하며 오늘의 성공을 이루었을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 논리가 우선이라 하더라도 사람이라면 인과응보를 알아야하고, 범사까지도 감사히 여긴다면, 생명의 은인, 살려주고 도아 준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오늘날 대한민국대통령의 자리를 꿰어 차고 대한민국의 국시를 무시하고, 그 주적인 김정은과 한때 우리를 죽이던 원수 중공군사령관 시진핑에게 나라와 국민을 폭망(暴亡)케 해서라도 섬기고 돕겠다? 이해가 가능한가?

필자는 12살 중학생이 되고 두 달 만에 6.25를 맞고, 이틀 뒤, 북한군 해군선박이 서해안을 타고 내려올 때까지 모의총에 대검한 해군소년병복장으로 현역해군 배석장교의 지휘를 받아 대천수산중학교를 경비했었다. 나는 토지개혁이라며 벼이삭이 바람에 살랑대는 논에 이웃집 팻말이 박히고, 대창에 밀려 인민재판장에서 끌려가던 국방군휴가병을 보았고, 조개잡이를 나온 수 백명의 어린이와 부녀자들 틈에 끼어 호주 색새기(미군제트기를 그렇게 불렀다)의 활강에 혼비백산되기도 하고, 인민재판에 끌려가, 도주하던 인민군에 의하여 농업창고에서 우리가 뜯어다 바친 마른마초와 함께 시체를 분간할 수 없게 타버린 우리외가 동네에 살던, 외5촌, 소학교후배의 아버지 부면장, 그 동생 대한청년단원의 숨어서 쉬쉬하며 지내던 장례식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6.25를 기억하고 증언할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공비들 만행을 용서하며, 우리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적들을 잊겠는가?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우리가 본 것이 잊을 수 없는 6.25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