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칼럼 4] Non-Sibi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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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JANG

 최유진 노스파크대 생물학 교수, 장재혁무디신학대 작곡과 교수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가 명문고로 불리우는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이 학교의 많은 졸업생들이 각계 각층에서 리더쉽을 발휘하며 인정을 받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이유가  단지 명문고 출신이라는 딱지를 가졌기 때문일까? 혹은 학교에서 많은 지식을 배워서 그 지식을 사용할 데가 많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일까? 필립스 엑시터가 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비결은 그런 것에 있지 않다. 필립스 엑시터의 교육 이념에서 핵심은 인성이다.

존 필립스는 1781년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를 세우며 재산 기부 증서에 이렇게 썼다. “교사의 가장 큰 책임은 학생들의 마음과 도덕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지식이 없는 선함은 약하고, 선함이 없는 지식은 위험하다. 이 두 가지가 합쳐서 고귀한 인품을 이룰 때 인류에 도움이 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이 말은 필립스 엑시터의 헌법과도 같이 여겨진다. 해마다 개학 후 첫 번째 조회 시간이 되면 교장 선생님이 이 말을 주제로 연설을 한다. 이 전통은 필립스 엑시터가 개교한 후 한 번도 빠

지지 않고 지켜져 왔다.

존 필립스의 설립 정신은 필립스 아카데미의 학교 인장에서도 드러난다. 학교 인장<사진>을 들여다보면 여러 개의 문장이 보이는데, 위쪽에 있는 ‘Χaριτι Θεοu’는 ‘하나님의 은총으로’라는 그리스어다. 아래쪽에 있는 ‘Finis Origine Pendet’는 ‘끝은 시작에 달렸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로마 시인 마닐리우스의 시집 『아스트로노미카 Astronomica』에 있는 말이다. 그리고 인장 디자인 속에 위치한 떠오르는 태양 그림 안에 있는 ‘Non Sibi’는 ‘자신을 위하지 않는’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이 세 개의 문장은 필립스 엑시터의 표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중에서도 평소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단연 ‘Non Sibi’ 정신이다. 좀 더 풀이하자면 ‘이곳에서 배운 것을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을 위해 써라’라는 교훈을 강조하는 말이다.

‘Non Sibi’는 내가 경험한 하버드의 봉사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하버드의 캠퍼스에는 정문이라고 불리우는 출입구가 없는 대신 여러 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그 중에서 나는 ‘Dexter Gate’라는 작은 문을 좋아한다. 이 문에는 캠퍼스로 들어가는 방향으로는 ‘들어가서 지혜를 키워라 Enter to grow in wisdom’고 쓰여 있고, 밖으로 나오는 방향으로는 ‘나가서 나라와 인류를 섬기라 Depart to serve better thy country and thy kind’고 쓰여 있다. 곧 ‘다른 사람들에게 기여하기 위해 배워라’는 것이다. 하버드와 필립스 엑시터는 같은 교육 철학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능력 때문에 당신을 고용했지만 당신이 가진 인성 때문에 더이상 일할 수 없다 We hire you for what you know but fire you for who you are’라는 말이 있다. 취직을 할 때는 높은 학점이나 자격증만으로도 가능할 수 있지만 인성이 문제가 되면 회사 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격이 형성되는 청소년 시기가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가정과 학교에서 선함과 지식을 함께 가르치고 있는가? 능력을 갖추게 하려는 교육은 강조하면서 인성을 키우는 교육은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나 있지 않은가? ‘who you are’ 때문에 이직을 하고 직장을 그만둬야 할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지, 혹은 반대로 ‘who you are’ 덕분에 직장에서 성공하고 사회에 이바지할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 (다산북스)의 내용이 참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