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칼럼 12] 하크네스 테이블 – 6하크네스에서 교사의 역할 : 학생은 주연, 교사는 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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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JANG

 

최유진 노스파크 대학 생물학 교수

장재혁 무디신학대 작곡과 교수

 

 

 

 

교사의 역할을 극명히 대조하여 표현하는 말로 “sage on the stage (강단 위의 현인)” 와 “guide on the side (옆에서 돕는 안내자 또는 조력자)”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전통적인 교수법은 ‘강단 위의 현인’이 책상 밑의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었다면 21세기의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조력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토론수업이 이루어지는 하크네스 테이블에서 교사는 철저히 조력자이다.

 

필립스 엑시터는 교사들이 서로의 수업을 참관하여 서로의 티칭 스타일에서에 장점들을 배우는 것을 매우 독려한다. 학생들이 하크네스 수업을 통해 급우에게 배우듯이 교사들도 서로에게 배우는 것이다. 모든 수업은 기본적으로 해당교사의 고유한 권한이 있지만 서로 참관하며 배우는 분위기를 당연시 여긴다.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는 학교 차원에서 교사들이 서로 다른 과목 교사의 수업을 참관할 수 있는 수업참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른 과목의 교사들끼리 파트너를 정해서 서로의 수업을 참관하고 느낀 점, 배운 점을 토론한다. 학교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영어와 수학 수업을, 남편은 수학과 라틴어 수업을 참관할 기회를 가졌다.

 

홀컴 선생님의 11학년 영어 수업 시간. 수업이 시작된 후에도 홀컴 선생님은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나마 학생들에게 간간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거나 발표 내용을 정정하는 코멘트를 했는데 전체 50분 수업 중 학생들에게 네 번 정도 얘기를 건넸다. 그리고 그 시간은 모두 합쳐도 3분도 채 되지 않았을 만큼 짧았다.

 

남편이 참관한 켐프 선생님의 10학년 수학 수업 시간. 수업이 시작되자 대뜸 4명의 학생이 칠판에 나아가 지난 수업에서 숙제로 내 준 문제들을 풀기 시작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지난 수업에서 배운 공식을 가지고 응용문제를 숙제로 푼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들은 배우지 않은 그 문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오는 것이 숙제였던 것이다. 네명의 학생들이 문제를 풀고 난 후 한 사람씩 나와서 자기가 어떻게 문제를 풀었는지 설명을 했다. 그리고 학생들끼리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면서 공통된 원리를 찾아나가기 시작했고 4개의 문제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공식’을 만들고 검증했다. 공식을 먼저 배우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가면서 공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켐프 선생님 역시 3-4번 정도 말문을 열었을 뿐 대부분의 시간은 학생들에 의해서 수업이 채워졌다.

 

하크네스 수업을 경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우리는 ‘그럼 하크네스 수업에서 교사는 수업 시간에 무엇을 가르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궁금증에 대해 베테랑 영어 교사인 울프 선생님은 ‘하크네스 수업은 “가르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한다”라고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자신도 수업을 시작할 때면 강의가 아니라 질문으로 토론을 유도한다고 알려 주었다.

 

내가 필립스 엑시터에서 교사 채용 인터뷰를 받던 날, 생물학 교사인 맷랙 선생님은 하크네스 수업과 관련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것은 ‘반(反) 강의’ 철학이었다. “하크네스 테이블에서 교사는 강의를 하지 않습니다. Absolutely no, no!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안내자로서 교사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내용을 전달하는 수업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학생 한사람 한사람의 특성을 인정하고 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교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이 전 글에 작가로 알려진 필립스 엑시터 졸업생 이창래 교수를 언급했었다. 학생 이창래가 제출한 작문 숙제에서 그 잠재력을 알아본 담당 교사는 앞으로 모든 숙제는 신경쓰지 말고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으로 숙제를 대신해도 좋다는 파격적인 배려를 했다. 학생이 가진 재능을 파악하고 틀에 가두지 않고 그 재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 필립스 엑시터의 교사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모습이다.

 

안내자는 권위적이지 않다. ‘강단 위의 현인’ 역할을 맡은 사람은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권위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안내자는 여행자가 위험에 빠졌을 때나 여행자 스스로가 도움을 청할 때 안내자의 권위 또는 전문성을 드러낸다. 교사의 역할은 바로 이렇게 학생의 배려하고 살피는 것. 안내자에게는 주도권이 없다. 바로 하크네스 수업에서 학생은 주연이고 교사는 조연이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 (다산북스)의 내용이 참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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